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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PIFF- 영화의 바다, 울고 웃었던 9일

[스포츠서울닷컴ㅣ부산=김지혜·나지연기자] 올해로 13살이 된 피프(PIFF·부산국제영화제).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훌쩍 자란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60개국 315편의 영화를 쉴 틈없이 선보였다. 하지만 그 속은 나이만큼 여물진 못했다. 크고 작은 잡음을 일으키며 놀러온 친구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다소 우울하게 시작했던 첫날 밤을 뒤로하고 다가올 14번째 생일을 기약하며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기자 역시 부산을 찾아 피프와 9일간 동고동락을 했다. 피프가 마련한 깜짝 이벤트 덕분에 웃기도 했고, 피프의 습관적인 고질병 때문에 울기도 했다.

영화제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2일 영화배우 최진실이 목숨을 달리해 우울한 개막식을 보냈다. 그러나 슬픔은 잠시 뒤로. 3일 한국계 할리우드 스타 3명이 고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5일에는 송혜교의 할리우드 진출작을 미리 감상하는 행운도 잡았다. 6일은 3년만에 돌아온 최민식과 만나는 자리였다.

물론 삐걱거리는 날도 있었다. 2일 개막식에서 마이크가 고장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4일 상영될 예정이었던 서극 감독의 '모든 여자가 나쁜 것은 아니다'는 제작사 사정으로 출품이 취소됐고, 8일에는 이란의 사미라 마흐말마프와의 오픈토크 행사도 물건너 갔다. 잔뜩 기대를 안고 부산을 찾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 밖에 없는 사고였다.

또 어떤 일이 있었을까?

 

D-1. 영화의 바다, 열리다 : 꼭 레드카펫이어야 할까. 수년간 영화제를 취재하면서 단 한 번도 카펫의 색깔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공교롭게도 故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일. 레드카펫 행사 대신 블랙카펫 애도를 하면 어떨까 엉뚱한 상상을 했었다.

그만큼 제 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행사는 희비가 교차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개막식에서 이례적으로 먼저 간 배우 최진실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바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부 배우는 레드카펫 취소를 표했고, 일부 배우는 검은색 드레스로 고인의 넋을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제는 우울하게 막을 올렸다.

D-2. 영평상, 올해는 주인을 만났다 : 미국에 뉴욕비평가협회가 있다면 한국에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가 있다. 역사는 다르지만 권위에 있어서 만큼은 뒤지고 싶지 않다. 실례로 지난해 부산영평상은 최우수작품상을 선정하지 않았다. 최악으로 치닫는 한국영화를 반성하자는 자성의 의미였다.

올해는 어땠을까. 여전히 '막' 만드는 충무로에게 또 한 번 경고를 날렸을까. 아니다. 자존심 하나로 뭉친 부산지역 평론가들이 늦게나마 칭찬의 미덕을 발휘했다. 물론 좋은 작품이 있었기에 칭찬은 당연했다. 올해 제 9회 영평상 시상식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밤과 낮'으로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D-3. 우에노 주리, 뜻밖의 선물 : 지난해 부산을 찾은 일본 최고의 스타가 기무라 타쿠야였다면 올해는 우에노 주리였다. 드라마 '노타메 칸타빌레'와 영화 스윙걸즈'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주리는 움직였다하면 팬들을 몰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구는 고양이다'라는 영화로 부산을 찾은 주리는 자신의 분신마냥 영화 속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날렸다. 기자회견, 무대인사, GV 등 영화와 관련된 모든 행사를 빠지지 않고 참석한 주리는 성실한 태도와 따뜻한 매너로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돋보이는 스타가 됐다.

 

D-4. 송혜교, 만약 충무로였다면? :

톱스타 송혜교가 치명적인 그녀가 돼 돌아왔다. 할리우드 데뷔작인 '시집'을 통해 데뷔 후 첫 팜므파탈 도전한 것. 이례적인 베드신과 생소한 영어 대사는 송혜교의 변신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 진부한 스토리와 전형적인 연출은 "과연 할리우드가 아닌 충무로였다면 출연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낳게 했다.

미국 배우들과 현지 스태프들과 작업했던 송혜교는 "현지 스태프들의 따뜻한 배려속에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독립영화라 부담없이 편하게 임해 더욱 연기가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부담스러웠던 송혜교는 이 작품을 '뉴욕의 독립영화'로 봐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D-5. 3년만에 돌아온 '겸손한 민식씨' : 한 영화 관계자는 위기설을 말할 때 마다 최민식을 찾았다. "민식이형이 있다면 좀 더 괜찮아졌을텐데." 하지만 최민식은 지난 3년간 없었다. 2005년 '검색하기 친절한 금자씨' 이후 스크린 뒤로 사라졌다. 고액 개런티 논란 때 실명으로 거론돼 이기적인 배우가 됐고,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대출광고까지 출연해 '돈'에 눈 먼 스타로 낙인 찍혔다.

몇차례 홍역을 치른 그가 기름기(?)를 쫙 빼고 돌아왔다. 전수일 감독의 독립예술영화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를 통해 팬들을 찾았다. "8,000m급 봉우리들이 버티고 있고 바람은 날아갈 정도로 불었지만 참 좋았다"고 말하는 최민식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겸손함. 자세는 '올드보이'가 아닌 '영맨'이었고, 대화는 '친절한 금자씨'가 아닌 '겸손한 민식씨'였다.

D-7. 예상된 악재, 가을야구를 만났다 : "가을에도 야구하자"고 8년을 외치던 부산 갈매기. 피프 6일째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지난 8일 사직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스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막을 올린 것. 영화제 입장에선 이미 예상된 악재였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거짓말 좀 보태 오륙도 갈매기까지 사직벌을 찾은 느낌.

영화축제는 가을야구에 밀려 그렇게 조용히 외면당했다. 사실 영화제는 반환점을 돌면서 서서히 그 열기를 잃어갔다. 누구의 잘못이냐고 물으면 '스타'의 무관심을 한번은 꼬집고 싶다. 실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타들은 자신의 일정이 끝나기 무섭게 부산을 빠져 나갔다. 배우없는 영화축제, 얼마나 매력있을까.

D-8.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 '힘내라, 한국영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피프의 마지막 선택작. 폐막작은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다. 故 이청준 작가의 '조만득씨'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수경과 환자 만수의 교감을 그린 영화다. 감독의 기획의도를 그대로 옮기면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을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

현빈과 이보영의 호연, 그리고 윤종찬 감독의 깔끔한 연출이 돋보인 이 영화의 작품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지만 흥행성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강하고 자극적인 영화 속에서 무공해 채소의 맛을 내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D-9. 굿바이 피프, 초심을 부탁해 : 9일간의 영화축제는 또 그렇게 막을 내린다. 영화의 바다에 빠져 즐겁게 헤엄도 치고, 또 무섭게 허우적 대기도 했다. 스스로를 '피프폐인'이라 말하는 최정원(28)씨는 매년 10월 휴가를 내고 부산을 찾지만 웃기도 울기도 한다며 영화제의 빛과 그림자를 말했다.

"매년 외형적인 성장을 하고 있어요. 볼 만한 영화도 많고요. 하지만 문제점은 반복되죠. 우선 스타를 볼 수가 없어요. 별이 쏟아져야 할 영화제가 별 볼 일 없는 영화제로 전락하고 있죠. 영화제 규모가 커지면서 주최 측의 운영미숙도 눈에 띄죠. 때로는 고압적이거나 일방적인 태도를 보일 때도 있어요. 누구나 즐거워야 할 축제인데…. 폐인만 즐거워서는 안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