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을 돕는 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파괴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역기능을 가져다주는 이타주의는 절대 피해야 한다. 먼저 자신을 돌봐야만 진정으로 타인에게 베풀 수 있다.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타인을 보살피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보살펴라. 회복과 재충전이야말로 이타주의를 지속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앤서니 그랜트(Anthony M. Grant)· 앨리슨 리(Alison Leigh), 정지현 옮김,『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가(비즈니스북스, 2013)에서 읽어 보았다.
과연 이타성과 이타주의(Altruism)는 우리들 인간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문서적에서 살펴 본 이타 성과 이타주의(Altruism)라는 언어는 타인(他人)이라는 언어의 뜻으로서, 옛날 라틴어(Latin language) ‘alter hic’ 에서 유래된 것이었으며, 19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에 의해 최초로 파생된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기적이지 않은 동기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즉 자신이 어떠한 분야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나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타인을 위하고 타인에게 행복을 주려는 배려우선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언어적인 이해로 풀이하면, 이타성(이타주의)은 우선 존중과 배려에서 시작하며, 사회적인 어떠한 부분에서 행해지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는 다른 상대에게 대한 이익을 더 배려하는 성질인 것이다. 일반적인 사회통념상으로 이러한 원칙론을 감수할 수가 있을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극히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가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정반대적인 상황으로 반전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이타적이라고 하지만, 이타적인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보다 타인을 돌보는 데만 치중하여 정작 자신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전혀 알아차리거나 보살피지 못한 채 암울하게 살아가는 사례를 가끔 우리는 언론(言論, Media)을 통하여 접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집단에 대한 깊은 유대감과 대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연민성과 자기집단 중심적 이타 성에 따라, 오직 자기집단의 이익이나 자신의 대의를 위한 강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이다. 복잡 다양한 사회 속에서도 우리 모두가 상호간의 집단적인 성원으로서 서로 존경하고 수용되는가가 현대사회의 중요한 특성이며, 개인적인 행복추구권은 물론 사회집단적인 구성원으로 서로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인간관계 형성이 행복추구와 현실성에 정도를 결정하는 바람직함이고, 올바른 존엄성이라고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만, 소위 지성주의 사회는 수많은 정쟁과 반목이 서로 옳다고 하지만, 시국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다른 어느 누구나 어떠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이 우선 호의적인 행동을 하고자 하는 개인의 참다운 성향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타성은 인(仁)의 핵심 요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타인을 연민으로 선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회문화권에서 전통적인 미덕으로서, 우리 모두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이타성의 반대말인 이기심, 인색함, 공격성처럼 가끔 개인의 SNS나 언론에서 노출되는 자신의 일방적인 사고와 생각대로 분출하지 않아야 하고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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