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광도(鑛都) 태백’의 상징성
1) 대한민국 탄광촌의 메카 ‘광도 태백’
탄광촌은 농촌·어촌과 더불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산업공동체 사회를 상징한다. 남북한을 통틀어 탄광촌 역사는 100년 내외에 불과하지만, 산업근대화에 기여한 공로는 농촌이나 어촌을 앞선다. 한 국가의 산업시대를 대표하던 탄광촌이 모두 와해한 실정이고 보면 역사 교육적 측면에서라도 대표적 지역을 선정하여 성지화하고 기릴 필요가 있다. 남한의 전체 석탄매장량의 75%가 강원도에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표적 탄광촌 역시 강원도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도시가 태백시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하는데, 태백지역과 인연이 깊다. 한강이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하듯, 한국의 산업발전 원동력 역시 태백의 석탄산업을 통해 가능했다. 태백시의 석탄매장량이나 생산량은 한국 최대규모였기 때문이다. 1936년 남한지역 최대규모의 삼척탄광(현재 태백시의 장성광업소와 삼척시의 도계광업소)이 개발되면서 삼척탄전·태백탄전이 한국의 석탄산업을 주도했다. 국내 탄전별 부존 상황을 보면 가장 많은 광량을 보유한 삼척탄전의 가채율이 가장 양호하고 문경탄전·강릉탄전·보은탄전이 뒤를 잇는다. 1970년대 중반 삼척탄전(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의 석탄 총매장량은 4억6천만 톤으로 전국의 30.2%, 가채량은 2억6천4백만 톤으로 전국의 40.5%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탄광촌으로 태백시·삼척시·정선군·영월군·문경시·보령시·화순군 등 7개 시군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태백시는 탄광촌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두루 지니고 있다. 다른 시군은 몇 개의 읍이나 면으로 일부 지역만 탄광촌을 구성하고 있는데, 태백시는 전 지역이 탄광촌 마을로 구성돼 있다. 장성지역의 장성광업소와 하청업체인 서울건업, 동점·철암지역의 강원탄광과 장성광업소 철암갱, 황지 소도지역의 함태탄광, 화전·추전지역의 황지광업소, 통리지역의 한보광업소 등 대규모 탄광이 도시 전역에 들어서 있다. 1950년대 태백지역에 등록된 민영탄광은 강원·함태·삼신탄광(1952년), 유창물산·장원·한보·성원탄광(1953년), 한성탄광(1954년), 태영탄광(1955년), 우성탄광(1956년), 어룡탄광(1958년) 등이다. 황지탄광(유창물산), 어룡탄광(동진물산), 한성탄광 등은 50년대에 광구를 등록하였으나 광업권자가 빈번하게 바뀌면서 영세하게 운영되다가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것은 60년대 초의 일이다. 그 사이사이에 군소 탄광 수십 개가 자리를 틀고 있다. 광업소의 규모, 석탄 생산량, 광부 숫자 등에서도 다른 탄광 도시가 넘볼 수 없는 최다 기록을 지켜온 대표성이 있다.
삼척군(장성읍·황지읍)에서 분리되어 ‘태백’이라는 새로운 시직제를 형성하던 1981년은 탄광도시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시승격이었다. 탄광촌에서 탄광도시로의 변모하는 과정이자, 석탄증산을 독려하기 위하여 탄광도시를 육성하는 국가의 기획이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에 도시 전 지역이 단일산업으로 시(市)직제를 갖춘 사례는 우리나라 다른 도시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태백시는 승격 당시 “맑고 밝은 광도(鑛都) 새태백 건설”이란 슬로건을 공식적으로 내세울 정도로 탄광촌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다. 당시 인구 114,095명으로 탄광을 통해 급성장한 탄광촌 마을이 시로 승격하면서 태백시는 전국 탄광촌의 대표적 장소로 부각했다.
태백시의 행정은 탄광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형태로 준비되었다. 태백시가 한 논단에서 밝힌 1984년의 글을 보면 “국내 유일의 광산도시를 개발한다는 목표로 황지, 소도, 동점, 통리를 연결하는 도시망을 조성하고…시가지는 광부사택촌과 간선도로를 잇는 지선도로를 정비포장” 하겠다는 의욕을 밝혔다. 태백시가 밝힌 ①국내 최대의 탄광도시, ②국민관광휴양도시, ③탄광지대 서비스 중심도시, ④탄광지대 유일의 축산 및 고랭지농산물생산지 등 4개 개발방향 중 3개가 탄광과 관련될 정도였다. 태백시는 시행정 자체에서도 탄광도시로 발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외부에서도 태백시는 한국 석탄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2) 전국의 순직 광부를 추모하는 태백의 제례와 산업전사위령탑
전국 최대 석탄매장지인 태백시에는 전국 최대규모의 광업소(장성광업소)가 있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광업소와 광부가 있었다. 석탄이라는 단일산업으로 시직제를 형성한 상징성 등으로 비춰볼 때 전국의 탄광 순직광부, 진폐재해 순직자 모두의 위패를 태백시에 모셔 기리는 일이 필요하다. 위패를 모실 때는 광업소 단위와, 지역 단위, 연도 단위 등에 대한 구분을 통해 체계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전국 석탄산업의 중심이던 태백시가 탄광문화의 생산지 역할을 해온 것처럼, 순직자를 비롯하여 광부 전체를 예우하고 공적을 기리는 사업 역시 태백시에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장이남은 “갱도붕락으로 남편이 순직하고 나서 태백시에 있는 산업전사위령탑에서 1년에 2번 제례를 지내는데, 참석하여 남편을 기리고 있습니다. 음력 7월 15일 백중제와 10월 위령제 2번 다 꼭 참석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위의 증언처럼 정선군 등 타지에 거주하면서도 제례를 위해 해마다 두 번씩 태백을 찾는 이들이 있다. 그동안 산업전사위령탑은 태백시가 우리나라 석탄산업사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지켜왔으며, 전국 순직광부를 위한 제례의 중심 공간이라는 전통성을 지켜왔다. 현재 태백의 산업전사위령탑 일대에서는 세 번 정도의 제례가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8월에는 순직산업전사유가족협의회가 백중절을 맞아 전국의 유가족들을 초청해 봉행제례식을 주관하는 백중제사가, 9월에는 진폐단체가 주관하는 진폐재해순직자 위령제가, 10월에는 태백제 기간에 태백시가 주관하는 산업전사 위령제가 있다.
태백에서는 광업소 단위별 위령제도 진행되고 있었다. 장성광업소는 장명사에서 위령제를 지내는데, 특이한 점은 장성광업소뿐만 아니라 앞서 폐광한 영월광업소와 함백광업소에서 순직한 광부의 영령까지 함께 위로하고 있다. 장명사의 명부전에는 3개 탄광에서 순직한 위패 1,014위(2019년 말 기준)를 봉안하고 있다. 소도의 함태광업소는 순직 광부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청원사라는 사찰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위령제를 지냈다. 또 철암의 강원탄광도 동점 비석산에 ‘강원탄광 순직자 위령비’를 세운 1959년 6월 10일부터 1993년 폐광할 때까지 34년간 단오제 때마다 해를 거르지 않고 위령제를 지냈다.
강원탄광 순직자 위령비에는 순직자에 대한 성명, 순직일, 직종, 나이도 함께 기록되어 간략한 생애를 알 수 있다. 강원탄광 순직자 위령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직자 위령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산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광업소 단위의 위령제는 태백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열린다. 삼척의 도계광업소는 단오절에 대계사에서 노사 간부와 순직 유가족이 모여서 순직 사우들에 대한 위령제를 지낸다.
또 경동탄광은 도덕정사에서 위령제를 지낸다. 1983년 경동탄광에서는 황조리에다 도덕정사를 건립한 뒤 조계종에 증여한 후 순직광부의 명단을 모셔놓고 사월초파일에 위령제를 지낸다. 도덕정사에서는 경동탄광에서 순직한 200여 영령의 천도를 기원하는 한편 노동자의 안전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매월 음력 18일 지장보살 제일에 맞춰 지내고 있다. 순직자 위패가 너무 많아지자 사찰에서는 ‘경동탄광 순직자 각 열위영가’ 동참 위패를 크게 만들었다
태백에서는 순직 재해별, 혹은 광업소 단위별 위령제가 각각 다른 것을 두고 통합하여 대규모 위령제로 격상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급히 해결할 일은 아니다. 순직 재해별, 광업소 단위별, 지역별 광부의 위령제가 전통을 계승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만, 단위별 위령제 외에 전체 산업전사를 위한 대규모 위령제를 별도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폐광한지 오래된 광업소에서는 위령제의 전통이 사라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대규모 위령제로 통합하는 것은 맥이 끊어진 단위별 위령제를 흡수하는 형태로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사회의 가정 제례 역시 개별 가정의 제례와 문중의 제례가 나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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