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강릉시민의 단오 문화를 가꾸고 사랑했기에 가능했다. 강릉단오보다 유명했다던 함태단오가 사라진 것은 함태광업소가 사라진 때문이 아니라, 그 문화를 계승하려는 주민들이 사라진 때문이다. 탄광촌이 지니고 있는 산업·지리·문학·문화·민속 등 다양한 분야로 접근하여 탄광문화를 정리해야 한다. 석탄산업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한다면 그와 관련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강릉시에서 단오를 유네스코에 등재한 이후 단오문화관 설립과 정규 직원을 채용한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단오는 1년에 한 번 지내는 축제이지만, 석탄산업유산은 시설을 통해 연중 지속하는 것이므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그리고 탄광촌 지역이 세계인을 부르는 관광의 세계화 가능성도 열려 있다.
영국의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는 미시시피강을 “끔찍한 도랑”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트웨인에게 이 강은 “온전한 실체”이고 “인간여정”에 대한 중요한 상징물이다.
탄광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두 가지가 작용한다. 탄광촌이 호황일 때도 두 시선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탄가루가 날려서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없이는 못 살 거리에다 검은 탄물까지 흐르고, 3교대 때문에 낮에도 술취한 사람이 다니는 끔찍한 탄광촌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농촌과 도회지의 경제적 좌절을 딛고 마지막 인생의 선택지로 탄광에 와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성공한 막장의 희망이 있는 탄광촌이기도 했다.
탄광이 폐광할 때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시선이 존재했다. 태백시에서는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탄광의 흔적을 지우고~’ 어떤 사업을 전개한다고 보도자료를 만들 정도로 탄광은 지워야 할 흔적으로 알고 있다. 석탄합리화 이후 태백시에서는 개발 논리와 경제 논리가 앞선 탓에 석탄유산의 보존 문제는 뒤로 밀린 측면이 있다. 탄광촌의 석탄산업유산은 골프장이나 스키장, 혹은 카지노보다도 더 의미 있는 자산이다.
지리학자인 렐프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모든 개인은 특정 장소에 대해 다소간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것은 각 개인이 장소를 각기 다른 시공간적 계기를 통해 경험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그 장소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에 색깔을 칠하고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개성·기억·감정·의도를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조합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장소의 정체성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의도·개성·상황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이다.
북한 평양에 있는 아오지탄광은 남북한 통틀어 규모가 가장 크다. 공산국가 혹은 독재국가 체제 있으면서 아오지 탄광은 독재 혹은 노동 지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남한의 탄광 현실 역시 아오지탄광의 악명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한의 탄광은 이것을 기반으로 국가 산업화, 경제적인 서민 연료 제공, 노동운동을 통한 민주국가의 발판 마련 등의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더 많이 했다. 그러고 보면, 탄광의 지리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진다.
강원도의 탄광은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지나 한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했다. 석탄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에너지원이었기 때문이다. 산업전사 호칭처럼 국가가 개입한 노동력 확보를 거쳐,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이 점은 한국산업사가 부인할 수 없는 영역이다.
5) 대한석탄공사를 ‘탄광문화유산공사’로 전환
현재 운영 중인 대한석탄공사 3개의 탄광 중에서 장성광업소의 폐광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장성광업소의 폐광은 태백시의 존립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석탄공사의 존립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석탄공사 진로를 놓고도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인데, 지금으로선 광물자원공사가 광해공단과 최근 통합한 것처럼,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흡수 통합될 것으로 보인다. 광업소가 없는 상태에서 통합이란 자산에 대한 통합일 뿐, 사실상 해체나 마찬가지이다.
석탄공사 산하 광업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예전에도 이미 통합 논의는 있었다. 2015년에는 석탄공사를 석유공사나 가스공사와 통폐합하는 방안이 거론되었으며, 2018년에는 광해공단·광물공사·석탄공사의 통합이 거론되었다. 장성광업소 폐광 이후부터는 석탄공사 통합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광물자원공사의 부채 상황은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 통합과정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부실공기업의 대표주자로 논란이 되었던 한국광물자원공사는 강원랜드의 최대 주주인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통합하면서 부채 문제는 자유로워졌다. 2021년 9월 15일 광해광업공단으로 출범하면서 ‘광물 자원 탐사, 개발 기획 설계, 생산, 광해 방지, 광산지역 발전 사업’ 등을 하나의 선상에서 추진하는 동력을 얻게되었다.
짚어야 할 것은 통합 이전의 기관인 ‘한국광해관리공단韓國鑛害管理公團’의 핵심이 ‘광해鑛害’, 즉 광업 활동으로 인하여 생기는 피해의 관리에 있다는 점이다. 새로 출범하는 기관의 명칭인 광해광업공단에도 ‘광해’를 이어받고 있다. 그동안 광해는 폐수·지반침하·산림복구 중심으로 진행되어왔을 뿐, 그곳에 종사하던 광부와 주민들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을 위해 석탄광물을 개발하고, 그 과정에 피해를 본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여러 공사들이 겪는 문제이긴 하지만, 석탄공사의 부채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석탄생산원가보다 연탄값이 싸게 책정되는 등 석탄공사의 존재 이유는 1980년대 말까지는 한국산업에너지원을 생산하기 위해서였고, 지금까지는 서민들의 난방을 위한 국가 지원책이었다는 점이다. 자본잠식이나 부채 문제는 다른 공사의 여건도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석탄공사의 여건과 단순 수치상으로 비교할 수는 없었다. 위의 인용문에도 나왔지만, 석탄공사는 ‘정부 손실보전 규정이 있는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제 가장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점은 석탄공사의 존립에 관계된 것이다. 장성광업소·도계광업소·화순광업소 등 3개만으로 대한석탄공사가 기관을 유지하고 있는 터에, 가장 규모가 크던 장성광업소 폐광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한자원의 채굴 특성이나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추세로 볼 때 나머지 도계광업소와 화순광업소의 운명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석탄공사의 존립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광해공단으로 편입하여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석탄공사를 광해광업공단에 편입하여 해체하는 수순으로 갈 것이 아니라, 탄광촌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로운 방식의 대안이 필요하다. 그동안 광해공단은 카지노 수익금을 통해 폐광지역 7개 시군에 ‘적선하듯 퍼주는’ 지원형태에 불과했다. 폐광촌의 대체산업이라고는 카지노 외에는 변변하게 성공한 것도 없고, 실직광부와 폐광촌 주민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따라서 석탄공사의 진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행정기관이 통합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탄광문화유산공사’ 같은 체제로 독립하여 석탄공사가 남긴 시설을 산업유산의 세계자원화 방안으로 추진하는 방안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관광공사 외에도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경기관광공사, 제주관광공사 등에는 관광 중심으로 지역문화와 결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관광, 즉 문화를 산업화하는 21세기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대한석탄공사가 ‘탄광문화유산공사’ 형태로 전환하여 새로운 산업시대를 열어가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도 함께 추진하는 주체 세력이 될 것을 제안한다. 다만, 현재의 석탄공사 인력으로는 문화적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 현실인만큼 시설 관리를 현재의 인원이 진행하고, 문화유산공사로의 전환하는 사업 방향은 새로운 인력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비전 설정에는 ‘민·관·산이 협력하는 형태의 실행기구’가 필요하다. 민간기구로는 7개 탄광 지역의 탄광문화단체 및 사회단체를 꼽을 수 있겠고, 관은 7개 탄광시군과 강원도를, 산으로는 현재의 대한석탄공사 및 새 기구로 전환할 탄광문화유산공사로 지칭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사왈룬토의 옴빌린 탄광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 이 지역을 국가전략지역(Kawasan Strategis Nacional)으로 설정하는 과정에 있다. 탄광 유산을 국가가 주도하여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국가가 산업전사로 불러들인 광부와 그들의 희생이 있던 지역이라는 의미를 지키는 상징성도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관점에서 대한석탄공사를 ‘탄광문화유산공사’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장성광업소·도계광업소·화순광업소 자산을 활용하여 석탄산업 유산을 보전하면서도 현대인의 삶과 호흡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기획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향으로 전환할 때, 석탄공사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 71년간 한국산업 발전에 앞장선 공적을 지킬 것이며,
탄광촌에서 희생된 ‘물·흙·산’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광해복구가 진정성 있게 이루지는 것이다. 산업이 일군 농촌과 어촌의 마을화 자체가 우리의 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이를 잘 보전해야하는 것처럼, 탄광촌 역시 산업이 일군 마을이다. 다른 산업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인 바, 탄광촌은 특별하게 보존하고 지키면서 산업교육의 현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석탄공사가 광해공단 산하의 부서로 들어가서는 기존의 폐광지원책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며, 태백시와 삼척시가 석공의 탄광유산을 온전히 다 받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독립된 기관인 ‘탄광문화유산공사’로 자리할 때 석탄산업유산의 가치는 제빛을 발휘할 것이다.
이는 탄광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하는 길이며, 석탄산업유산을 활용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대한석탄공사를 탄광문화유산공사로 전환하는 것은 화석의 시대가 저물고 문화의 시대·생태의 시대로 변화한 현실성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끝>
2022년에는 지난 9일 하이원에서 열린 제2차 포럼에서 발표한 정연수 소장의 2차 주제발표 '특별법 이래서 필요하다'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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