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지방에서는 마을의 산 입구에 성황당이 있어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을 기원하는 제례를 지낸다. 태백산 인근에서도 많은 성황당이 있었으나 1970년대 대다수가 철거됐고, 지금은 몇 개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마을 주민들에 의해 일부 성황당들은 제례를 지내고 있다. 본지는 구전으로 내려오거나 민속학에서 본 성황당이나 김강산 전 원장 등 일부 향토사학자들로부터 정리된 글들을 수집해 작성했다. 내용은 일부 성황당제들이 마을 소단위로 진행되어 옴에 따라 행사개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구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지는 대성황당제 대한 지역사회 의견을 글로 담는다.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 성황당
성황당은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이다.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수호신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다. 조선시대의 서낭은 국행(國行)서낭과 민간에서의 서낭으로 나누어진다. 국행서낭은 호국(護國)이라는 두 글자를 붙였다.
이성계(李成桂)는 즉위 후 여러 산천의 서낭을 제사하였으며, 태종은 백악(白岳)서낭과 송악(松岳)서낭을 신도(新都)서낭으로 모셨다. 그 밖의 조선시대의 이름난 서낭으로는 해주·괴산·현풍·양산·신성(新城)·밀양·전주·고성서낭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서낭에서는 정기적인 제사뿐만 아니라,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서낭제를 거행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하려 하였다.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서낭나무에 잡석을 난적(亂積)한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②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 ③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④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⑤ 입석(立石) 형태 등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이 ①의 형태이며, ②의 형태는 ① 형태의 서낭나무가 퇴화되거나 길 옆에 누석단이 먼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③의 형태는 수목신앙(樹木信仰)에 후기적으로 서낭나무에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매는 헌남속(獻納俗)이 복합되거나 또는 처음부터 서낭당의 신수 헌납속만 강조된 형태로 볼 수 있다.
⑤의 형태는 높이 120∼200㎝ 안팎, 폭 90∼120㎝ 가량의 자연석을 세워놓고 ‘수구매기(水口막이)’·‘돌서낭’·‘선돌’ 등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중부, 남부 지역에서 간간이 발견된다. 신수에 당집이 복합된 ④의 형태는 중부 내륙 산간지역과 태백산백 동쪽의 영동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소도당골의 성황당
태백문화원 발간 『태백의 제당』에서 본 태백산 성황당
소도당골의 성황당은 소도 당골 제1주차장 한 가운데 있다. 원래 성황이 있던 곳 주변의 땅을 높이는 바람에 성황당 터는 주차장보다 1.5m 정도 낮아져 있다. 그러나 성황림이 있고 둥근 형태의 성황당 터와 낡은 성황당이 있었으나 최근에 개축했다. 시멘트 기와에 판자벽으로 맞배집 형태이다. 성황당은 주춧돌에서 약 55cm위쪽에 하방을 설치해 당집이 누각 형태가 됐다.
당집 외부 전면에 ‘太白山城隍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太白山大城隍之位’라고 쓴 나무 위패가 모셔져 있다. 당집의 형태는 외형은 시멘트기와, 파자벽과 한옥 맞배집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는 진설단이 있고, 면적은 가로 310cm, × 세로 290cm × 높이 270 cm이며 주변에 신목이 있다. 참나무와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그 외 잡목이 있다.
문헌자료로 본 태백산성황당
서낭당의 원어는 삼시랑이다. 삼시랑은 환인 환웅 단굴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이 삼신을 모셨던 장소이다. 또한 당골은 서낭당이 있는 골이한 말이며 ‘서낭당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축 전 소도 서낭당은 자료상 고조선 때부터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지키려는 여러 동민들의 노력으로 수회에 걸쳐 개축됐으며 위치는 지금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소도서낭은 1년에 2차례(음력 1월14일 밤, 단오날 아침 9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태백산대성황당은 지난 2004년 전국의 무속인들의 후원을 받아 당시 태백시 문화재보수팀에 의해 건축,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제례를 지내왔다. 아울러 건립한 날이 음력 10월 보름이었으나 해마다 열리는 날이면 초겨울의 추위가 찾아와 ‘앞당기자’는 의견으로 음력 10월3일에 지내오고 있다.
삼한시대에도 두 차례 천군을 선발하여 일정한 장소에서 제사하여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던 곳이다. 실제로 태백산의 사길령 산신각 제사의식보다는 빠른 고조선부터 단군의 제례의식과 함께 제의를 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
태백산성황당과 태백산대성황당제 활성화 방안 논하다
음력 10월3일에 거행되는 태백산 대성황당제
태백산대성황당보존관리위원회(위원장 김종순)가 주최하고 태백산상가협의회(회장 손장우)가 주관하며 태백민속문화전례원이 후원하는 대성황당 당제는 지역민의 건강 및 무탈과, 등산객들의 안전, 나쁜 기운을 없애 달라는 의미와 당골상인들의 사업도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제의 의미로 거행되고 있다.
작년에 거행된 임인년(壬寅年) 태백산대성황당 당제는 초헌관에 손장우, 아헌관에 김만복, 종헌관에 김삼종, 집례자에 김종순 위원장이 맡았으며 당제를 올리는 것은 마을의 수호신인 태백산 대성황신에게 제례를 올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들을 멀리 쫓아내고 태백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질병을 물리치도록 하는 뜻이 담겨 있다.
현재의 성황당제는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지낸다
태백산대성황당제는 마을주민들의 뜻을 모아 지내져 왔다. 집기나 제사음식, 그릇 등 모든 것이 기부에 의해 지내져 왔다. 그러나 최근 참석한 사람들의 식사를 비롯해 떡과 고기 음식 등을 담당하던 분이 병고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마을 주민들이 의견을 나누었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방안은 없는지 문의하게 됐고, 올해 봄, 몇몇 문화계 인사들과 마을주민이 시와 의견을 나누었으며 시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며 다만, 성황당이 지방유형문화재 등으로 승격됐을 경우는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단체에 의해 계승 발전되거나 문화재로의 승격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태백지역에는 마을단위 제례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태백산 산령각에서 매년 음력 4월15일에 거행되는 사길령(四吉嶺) 산신제와 음력 4월16일에 열리는 황연동 느릅령 유령제(楡嶺祭)가 알려져 있다. 이곳 제례는 헌관으로 시장과 의장이 참석한다. 그리고 황지동 연화산 산신제가 음력 5월5일 거행되고 있다. 연화산 산신제는 동장 등 마을주민이 앞장서서 봉행하고 있다.
또한 10월3일에 봉행되는 태백산 일대의 제례행사중 산신제와 단군제는 국조단군봉사회가, 태백산천제는 태백문화원이 주관한다. 물론 이들 행사는 지방비 등이 포함된다.
모든 제례는 헌관이 있고 집례자가 있으며 주관단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의 예산이 수반되는가’이다. 물론 일부 소규모 마을단위 제례행사는 주관단체의 규모가 커, 일부 예산을 확보할 수 있으나 태백산대성황당제는 기부금으로 봉행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태백산성황당은 4계절 등산객들이 태백산을 오르기 전에 제례를 올린 후 등산하고 있으며 장소도 태백산국립공원 당골지구 입구인 제1주차장 한 가운데에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찾기도 쉽고 관리하기도 어렵지 않다.
태백지역의 신당은 이곳 태백산성황당과 태백호텔 옆 소도성황당이 있으며 황지동 등 일부 동에도 제당이 있다. 태백산 등산객들에는 안전을, 지역민의 건강 및 무탈과, 나쁜 기운을 없애 달라는 의미와 당골상인들의 사업도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태백지역의 마을단위 제당이나 성황당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함께 지원방안도 논의하고, 특히 태백산지역에 대한 산당관리주체 등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관리를 하여 활성화 방안을 논의한다면 민속문화사료로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위 내용은 태백문화원 발간 태백문화 34집에 수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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