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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리포터뉴스

"언론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 죽였다"

미디어 오늘에서 퍼 온 글입니다./ 봉하마을 조문객, 언론 성토 봇물…"검찰보다 언론이 더 문제"

 

 

 

▲ 지난 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폭우를 맞으며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거하면서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 보복 수사 논란 속에서 목숨을 끊은 이번 사건은 역사에 남을 시대의 아픔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로 넘쳐났다. 주요 언론도 앞다퉈 기자들을 파견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추모객들의 질책과 따가운 시선이었다.

 

"나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라면 하나 못 얻어먹었지만 너무 불쌍해서 택시 타고 왔소. 서민들에게 잘해줬던 분인데…. 이런 비통한 일이 어디 있소."

 

부산에서 왔다는 추금순(61)씨는 지난 24일 낮 12시15분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합동분향소 앞에 마련된 천막에서 국밥에 김치 안주 삼아 막소주를 기울였다. 추씨는 검찰과 언론이 노 전 대통령 모욕 주기에 바빴고, 가족까지 괴롭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잡혀간다고 해도 할 말은 혀야겠소. 언론이 그렇게 하면 안되제. 젊은 양반 내 말이 틀렸소?"라고 말했다. 추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답변을 구하자 그를 바라보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에서 왔다는 61세 최주영(가명)씨는 추씨 옆자리에 앉아 소주잔을 달라고 하더니 "아줌마 말이 맞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영남 말씨를 쓰는 할아버지와 호남 말씨의 할머니는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정부 검찰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갔다.

 

봉하마을은 일요일을 맞아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해 진영읍에서부터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봉하마을 진입로부터 차량 통행이 금지돼 3㎞가량 걸어서 들어가야 했지만, 조문객들은 새벽부터 심야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유모차에 탄 아이부터 어린이, 학생, 젊은 연인, 직장인, 노부부, 스님, 외국인 노동자 등 세대와 계층을 불문한 다양한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고, 가족 단위로 찾는 이들이 특히 많았다. 유명 정치인과 학자, 예술인 등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통일을 위해 휴전선을 걸어 넘어간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며 "고인의 결백을 믿는다"고 말했다. 가수 김민기의 노래 <상록수>가 스피커로 흘러나와 노 전 대통령 합동분향소 주변을 잔잔하게 적시는 동안 시민들은 국화꽃을 정성스럽게 들고, 헌화와 분향을 이어갔다.

 

유시민, 이재정, 김두관 전 장관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상주 자격으로 조문객을 맞았고,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과 안영배 전 차장의 모습도 보였다. 오전에 햇볕이 따가웠던 봉하마을은 오후 들어 갑작스럽게 장대비가 내렸다. 하지만 조문객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장대비를 그대로 맞으며 헌화를 이어갔다.

 

봉하마을을 찾은 수십 만 명의 조문객에게 냉대를 받은 이들도 있었다. 주인공은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 조문객들의 인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박연차 게이트' 직접 관련성에 대해 뚜렷한 증거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언론이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는 비판이다. KBS는 추모객들의 반발로 취재에 어려움을 겪었다. 봉하마을에서 내쫓겨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현장 중계를 준비해야 했다. KBS 2TV <뉴스타임>은 조문 행렬에 대한 생방송 전달 과정에서 "관람객이 넘친다"고 표현해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봉하마을 합동분향소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은 언론인들의 취재에 협조하기 바란다"고 조문객들에게 당부했지만, 기자들을 향한 냉랭한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봉하마을에서 언론에 불만을 드러낸 이들이 '노사모' 소속인 것처럼 보도했지만, 특정 단체 소속이라고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비판 정서는 광범위했다. 봉하마을 조문객들은 이명박 정부의 표적 수사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진영읍에서 온 66살 동갑내기 이훈근(가명)씨와 박덕진(가명)씨는 "노 전 대통령은 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국가적 손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언론이 너무 심하게 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아들, 딸까지 욕보이고 꼭 그래야 했느냐"고 지적했고, 박씨도 "언론이 너무 심하게 했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자신의 신분을 모 대기업 간부라고 밝혔던 40대 전기영(가명)씨는 "검찰이 4·29 재보선에서 여당이 이기게 하려고 전직 대통령의 사돈에 팔촌까지 비리를 뒤졌고, 안 되니까 아들 딸까지 조사했다. 나는 노사모도 아니고 뭐도 아니다. 제도권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언론, 특히 조중동이 문제다. 그들이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전씨 얘기를 듣고 있던 30대 여성은 아이의 손을 잡고, 목놓아 울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노 전 대통령 합동분향소 맞은편 '임시 분향소' 입구에는 "방상훈의 개들은 오면 죽는다"는 글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임시 분향소 옥상에서 3명의 30∼40대 남성이 "조중동은 물러가라. 조중동은 물러가라∼"고 외치자 아래에 있던 조문객들은 구호를 따라 부르거나 손뼉을 쳤다.

 

임시 분향소 앞에서 만난 40대 조재호(가명)씨는 "언론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은 자신의 언론사 로고가 찍힌 사진기나 언론사 기자증을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일부 조문객들은 "이곳에 조중동 기자들이 있다. 그들을 꼭 찾아내겠다"면서 격앙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을 향한 비판적 정서는 일부 보수언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경향신문, 한겨레를 포함해 진보·개혁 성향 언론사 기자들이나 MBC, SBS, YTN 등 다른 방송사 기자들도 수위는 달랐지만, 환영을 받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24일 오후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조문객들에게 쫓겨 경찰 경비숙소에 몸을 피했고, 숙소 주변을 시민들이 둘러싸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백원우 의원이 자제를 당부했지만 격앙된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즉석에서 토론의 광장이 펼쳐졌고,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추모객들의 불만은 언론으로 옮겨갔다. "검찰보다 언론이 더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이 죽였다." "맞다. 언론이 제일 썩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취재를 위해 현장에 있었던 언론인들은 추모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현장에서 언론 문제를 지적했던 박아무개(31)씨는 "MBC에 서운하고, KBS에 배신감을 느낀다. 지난해 공영방송을 지키고자 KBS 앞에서 주말에는 밤을 새우며 촛불을 들었다. 사실 그대로만 보도해도 좋은데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바뀌었다고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미디어오늘.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