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시민주식회사를 기억하다!”
1992년 폐광으로 암울했던 폐광지역 회생의 순수한 시민정신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최초 시민(주민)주식회사를 설립에 최초 발의자 김재영의 “세계 최초 시민주식회사를 기억하다!“를 연재한다.
1.
지구에 인류가 태동하면서부터 불(火. Fire)이 발견되었고 지금까지 인류와 존재하며 현대 인류생활에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서 현대시대에도 각종 산업현장들과 생활에너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열(火) 에너지(heat energy) 변천은 이제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탄소배출 억제라는 새로운 에너지와 연료들이 개발되고 있는 즈음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연료에너지 지하자원은 석탄 에너지(Coal energy)가 유일한 지하자원이었으나 지금은 퇴출되는 과정에서 전국의 3백 곳이 넘던 석탄산업 현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현재 국내 4곳만이 가행되고 있지만, 이나마도 곧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1973년은 전 세계가 석유파동(石油波動, Oil Shock)으로 국내, 외는 물론,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석유를 경제무기화로 수출을 금지하는 제1차 석유 파동(오일 쇼크)이 발생하였고, 1978~1980년 이란과 이라크전쟁으로 국제석유가격의 급상승과 그 결과로 나타난 석유소비국들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경제적 위기와 혼란이었다. 반면 국내 석탄 산업은 호재(好材, Good news)로 작용되어 국내 탄광들은 정부의 석탄생산 독려와 함께 석탄생산의 증대되는 시기였으며, 석탄을 구입하려는 관련 사업자들이 주재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석탄 산업이 호황인 이 시기에는 국내 최고 지폐가 1천원 권인 시절인데 탄광지역 강아지는 1만 원 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이야기의 탄전지역 경제는 석탄생산을 하듯이, 도로를 비롯해 동네가 온통 석탄가루 속의 생활이지만, 석탄과 돈의 풍요로움(Riches of coal and money)의 경제적인 호황의 도시들이었으며, 마치 American dream 개척시대 황금 광산(黃金 鑛山, Gold mine)과도 연상케 하였다.
신재생 대체 에너지가 없던 시절에는 세계는 물론 우리 대한민국도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석탄 산업(石炭 産業, Coal industry) 번성기 시대였으나, 급변하는 자연환경 파괴와 훼손으로 지구를 보존하고 지구환경 복원을 위해 선진국들과 중, 후진국들 모두가 세계적인 탄소중립(炭素中立) 억제정책인 에너지 전환으로 국내, 외적으로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탄(石炭, Coal)에 대한 생산중지 및 석탄 산업 이미지가 추락하고 에너지로서 쇠락 속도도 급변하게 진행하는 시대가 진행되었다 .
과거 우리나라 석탄광산은 아시다시피 크게 국영탄광(國營炭鑛), 민영탄광(民營炭鑛), 조광탄광(粗鑛炭鑛)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국영탄광이란? 국가가 운영하는 대한석탄공사(石公)로 정부주도하에 석탄정책 사업 추진과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석탄 생산, 수출과 수입의 수급조절 등 직접기능의 국내 최대 탄광으로 1984년에는 국내 총생산량 4,953,036톤에서 대한석탄공사 산하 광업소들이 2,137,329톤을 생산하며, 태백, 도계, 영월, 문경, 화순 등에서 당시 국내 총생산량의 43%를 차지하는 국내 석탄수급의 절대적인 공기업이었다.
민영탄광이란?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곳(本 炭鑛)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는 태백(太白)에는 강원탄광과 함태탄광, 어륭탄광, 한성탄광, 황지탄광 등과 정선 사북(舍北)에 동원탄좌와 고한(古汗)에 삼척탄좌, 삼척 도계(道溪)에는 경동탄광, 영월 상동(上洞)에는 광물자원 중석(重石, Tungsten)인 대한중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표적인 민영탄광들이 탄광을 기반으로 훗날 강원산업, 대성산업, 삼천리산업, 동원그룹 등이 국내에서 성공한 예라고 본다.
조광탄광이란? 조광탄광의 전신인 덕대 탄광(德大 炭鑛)들이 난무하던 시절에서 광구임대 분양이 되면서 조광탄광(下廳 炭鑛)으로 변화되어 온 것이다. 조광탄광 시절에는 “탄 구덩이와 여자는 맨 나중에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 라는 조어(造語, Coinage)로서, 조광 경영주가 수시로 바뀐다는 뜻에서 자조하는 심리적인 부분이 합성해 낸 은어(隱語, Jargon)들 이었다.<계속>
김재영(1951년생)은 체육학(운동생리학)을 전공한 체육학자로 지난 19년 동안 대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한양대학교에 재직 중이며, 현재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레저스포츠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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