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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인터뷰·칼럼

기고-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 6 탄광촌 실정과 광부의 노동 현실(상)

‘에라, 까짓 안 되면 탄광에나 가지!’라고 체념하면서 내뱉던 유행어는 마지막에 선택하는 탄광노동이라는 직종의 열악한 실상을 대변한다. 광부들이 자조하듯 내뱉는 ‘막장 인생’이라는 말 역시 노동 현실을 반영한다. ‘막장’이라는 용어는 광부의 작업 현장이란 의미 외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채굴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을 내포하고 있다.

 

1970년대는 1년에 평균 200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는 탄광막장이었다. 갱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같은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동시에 생명을 잃기 때문에 ‘한 막장은 한 제삿날’이라고 불렀다.

 

사망사고 비중이 가장 컸던 때는 1973년이며 탄광노동자 34,573명에 229명이 사망했다. 경상을 포함하여 재해자 수가 가장 많았던 때는 1967년의 6,774명이다. 탄광 숫자도 제일 많고 광부 수도 제일 많은 1987년에는 탄광 363개소에 68,491명이 종사하고 있었으며 사망자는 174명이다.<도표>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은 탄광사고는 공식집계로 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그 이상의 광부들이 숨졌을 것으로 파악되며 광업공단이나 노동조합에서도 그 기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태백시 고한사북 도계읍 등 폐광지역은 석탄산업전성기인 1970년대엔 매년 200명에서 250 명의 광부들이 탄광사고로 숨졌고 중경상자들도 4~5천 명이나 발생했다. 이게 전쟁터지 어찌 일터라고 할 수 있나? 그러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상당수가 진폐증이란 불치병에 걸려 힘겨운 노년을 살고 있다고 전한다.(성희직 소장 인터뷰 내용)

 

탄광 막장은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노동 강도가 높은 까닭에 재해가 잦았다. 1980년대 전체 산업노동자 6백만 명 중 탄광노동자의 비율은 1.5% 이하였지만 사망이재자 비율은 전체 산업 대비 평균 14%에 이르렀다. 이는 탄광재해율이 일반노동자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0~1980년대에 유행하던 ‘선 생산, 후 안전’이라는 탄광 유행어가 반영하듯, 안전시설 확충이나 안전작업보다는 석탄 증산에 더 몰두하고 있었다. 탄광의 사고는 안전시설과 생산에 쫓겨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마치 전쟁터에서 전사한 군인처럼 애국으로 포장하려 들었다. 산업전사의 호칭 뒤에는 보국증산을 위한 희생제물의 강요가 담긴 것이다.

 

삼척시 도계읍에는 ‘산업전사 안녕 기원비’가 세워져 있고, 지역주민이 영등제를 통해 재해예방을 기원하고, 도계광업소 차원에서는 정월 보름 새벽마다 별도의 안전기원제를 지낸다. 광업소 단위의 안전기원제뿐만 아니라 정월 보름 이후에 별도의 날을 잡아서 동덕갱·도계갱·흥전갱·나한갱 등 생산부에서 각각 갱장이 주관하여 갱 단위의 안전기원제를 진행한다. 또한, 대한석탄공사 본사 차원에서도 안전기원제를 지내는데, 장성광업소가 주관하여 1월 중순(2019년은 1월 12일, 2020년은 1월 18일) 태백산 천제단에 올라 ‘안전기원제’를 지냈다.

 

산신제와 당고제는 함태광업소의 소식지에 주요 동정으로 등장했다. 태백의 함태광업소는 가을 산신제와 단오 때 산신당 당고제를 통해 광부의 안전과 회사 발전을 기원했다.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제례의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탄광사고가 잦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광촌에는 여성을 억압하는 금기가 많고, 광부의 심리적 안정을 요구하는 금기도 많았다. 여자가 남자의 앞길을 가로질러 걷지 못하고, 출근한 남편의 신발을 방안을 향해 돌려놓거나, 갱내에서는 휘파람을 불지 않는 등의 금기행위는 탄광촌 공동체를 이루는 속신이기도 하다. 산업화 발달 과정에서 다른 도시에서는 과거 금기가 사라지는 추세 속에서도 탄광촌은 새로운 금기와 금기행위가 만들어지고 공고해졌다.

 

이는 바깥 사회와 단절된 지리적 폐쇄성과 석탄산업이라는 단일 업종으로 이뤄진 사회공동체의 영향이기도 하다. 탄광촌의 금기는 안전시설이 미비하던 탄광작업의 문제를 광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로 돌리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광부의 직업병인 진폐재해로 순직한 희생자를 더하면 탄광순직자의 몇 배를 넘어선다. 탄광이 문을 닫은 후에도 진폐재해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탄광촌마다 들어선 산업전사위령탑과 6개나 되는 진폐재해단체는 진폐환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는 총 6개로 각각 중앙본부와 지역 지부를 따로 두고 있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한국진폐재해자협회, 대한진폐재해자보호협회가 태백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중앙진폐재활협회는 삼척시에, 광산진폐권익연대는 정선군에 본부를 두고 있다.

 

산업화 과정을 온몸으로 받아낸 증거이기도 하다. 1988년도에 발표된 탄광 근무연수에 따른 진폐증 발생현황에 따르면 5년 이하는 7.1%, 6~10년 32.2%, 11~15년 50.5%, 16~20년 56.6%, 20년 이상 76.3%의 발생률을 보이고 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