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사라는 호칭은 국가권력이 노동자를 전시의 군인과 같은 긴장으로 몰아넣으면서 맹목적인 애국을 내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전투군단과 같은 군대식 규율이 탄광의 광부에게 요구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광부에게는 인권이 없었고, 생산하는 기계로 작동하는 전사의 임무가 주어졌다. 생산량이 부족할 때는 얼차려와 같은 군대식 기합과 뺨 때리기, 조인트 까기, 타코망치로 광부의 머리를 때리는 관리자 등의 구타도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1987년 장성광업소 탄광노동자들이 관리자의 횡포에 맞서 ‘백바가지 몰아내기’ 파업운동은 광부가 처한 현실을 증거한다. “광부도 사람이다, 백바가지 몰아내어 우리 인권 쟁취하자!”라는 구호가 주류를 차지한 당시의 투쟁은 흰색 안전모를 쓴 관리자의 억압에 따른 광부의 분노가 분출된 것이다.
한국의 석탄산업을 선도하는 대한석탄공사의 사장직에 군대 장성 출신이 많았던 것은 군사정권에서 군인을 우대하는 정책이기도 했겠지만, 군대식 명령을 통해 석탄의 생산력을 높이려는 규율의 방식이기도 했다. 다른 공사 기관의 대표에도 군장성 출신이 우대되긴 했지만, 대한석탄공사는 군장성의 영향이 더욱 컸다. 1961년의 9대 사장부터 1972년의 16대 사장까지 총 4명의 장군 출신이 부임했으며, 19대 사장이 취임한 1974년부터 27대 사장이 퇴임한 1995년까지 20년간 군 장군 출신이 연속적으로 임명되었다. 장군 출신의 사장이 대한석탄공사를 이끌면서 각 산하 광업소는 군대식 위계질서가 공고해졌다. 광업소에서 노동자들이 안전을 이유로 구타당하고, 초급관리자는 생산 책임량을 이유로 상급관리자에게 구타당하는 노동환경까지 만들어진 것도 군대식 통제와 무관하지는 않다.
인용한 「대한석탄공사 사가」나 「모범 산업 전사의 노래」에서처럼 광부에게 산업전사라는 의식을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한국 국가권력이 사용한 산업전사라는 호칭은 일본 제국주의의 노동 통제 담론과 차이가 없다. ‘석탄증산 보국’이라는 애국적 용어와 함께 ‘산업전사’가 짝을 이루면서 ‘전사-애국-석탄생산-희생’은 하나의 의식체제로 작동했다. 일제강점기는 전쟁이라는 외부적 요인이라도 있었지만, 한국은 산업발전이라는 내부적 요인만으로 ‘산업전사’의 호칭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산업전사 호칭은 오히려 일제보다 더 교묘하고, 더 화려한 수사로 광부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다양한 당근(모범산업전사 선정)과 채찍(증산보국)을 병행하면서 광부들을 긴장 속에 몰아넣은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인물·인터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광문화유산 연재] 김재영 석탄산업 역사문화 기록자-1 (0) | 2021.11.11 |
---|---|
태백시, 11월 정례시상식 개최 노인의 날 유공 및 업무추진유공 표창 (0) | 2021.11.03 |
기고-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 3 ‘산업전사’ 용어 국가권력이 더 적극 사용 (0) | 2021.10.28 |
[독자기고] 류상옥 황지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 (0) | 2021.10.19 |
[독자기고]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 2 국가권력이 만든 탄광지역의 산업전사 (0) | 2021.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