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산업전사위령탑과 위령제를 보며
올해는 태백시 개청 40주년 해 이다. 태백시는 국가에 의해 석탄산업 증대를 위해 탄생된 도시로 1981년 7월1일 삼척군 황지읍과 장성읍, 철암지역을 포함해 탄생됐다. 태백시 개청 당시 전야제의 불꽃점화 및 캠프파이어 축제도 산업전사위령탑 앞 마당에서 순직산업전사 영령분들과 함께하였다. 전국의 시개청 도시 가운데 순수하게 탄광으로만 이루어져 정부가 출범시킨 도시는 태백이 유일하다.
‘산업전사’라는 용어가 있다. 태백시 황지동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을 방문하면 ‘산업전사’라는 호칭을 알게 되는데 이는 석탄산업에서만 통용되는 말이다. 석탄산업은 정부에 의해 광부들을 교육시키고 ‘증산보국(增産保國)’하자며 광부들을 탄광의 막장으로 내몰았다. 이같은 정책은 일제 강점기때부터 비롯됐으며 한국전쟁때에도 정부는 석탄증산에 열을 올렸다. 이는 당시 국내 최대 탄광이었던 아오지탄광이 북한에 있었고 대부분의 지하자원 채굴이 북쪽에서 이뤄졌기에 분단된 남쪽에서는 석탄이 부족했다고 한다.
60~70년대 석탄 외에 에너지자원이 부족했던 우리는 영월을 비롯해 정선과 삼척(태백포함) 문경 보령 화순 등에서 석탄을 증산하기에 이르렀고 광부는 노동자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직종중 하나였다. 즉, 작업환경이 최악이었던 셈이었다. 지금은 노동관련 기관과 법률적 제도적 정비가 잘 되어 순직하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협의를 통해 예우와 혜택 등이 재해당사자와 유가족에 돌아가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는 정부와 광산기업체에서 증산보국에만 열을 올렸을 뿐 광부들의 안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은 미흡했다.
나는 석탄산업순직자 유가족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 해빙기 광산낙반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 당시 수 많은 광산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숨졌으며 일부는 위패로 남겨져 산업전사위령탑 등에 모셔져 있으나 많은 이들이 전국의 광산인근 사찰에 모셔져 있고 일부는 기억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태백시 황지동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은 1975년 건립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광산에서 너무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순직자가 늘어나자 직접 헬기를 타고 장성광업소를 방문했다. 그 실상을 알고는 너무 참혹하다며 숨져간 이들에게 혼이라도 달래야 한다며 위령탑 건립을 지시했고 그리고 황지동 일명 바람부리언덕에 세워졌다. 제1회 위령제에서는 당시 동력자원부장관이 참석해 위령제를 지냈으며 강원도 주관의 행사가 되었다.
현재는 위령탑에 4,112위, 위령각에는 9,680위의 위패(2021년 10월 기준)가 모셔져 있다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석탄에너지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석탄가격의 채산성 하락과 함께 가격상승으로 경쟁력이 약화돼 가스와 석유 전기 등 에너지로 변화됨에 따라 적절한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영세 및 부실탄광을 정리하는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을 실시했으며 광원들은 석탄광의 폐광이라는 구조조정아래 잊혀져 갔다. 또한 이제까지의 광산사로로 순직한 산업전사들은 유가족과 위패를 모신 단체와 기관이 중심이 되어 쓸쓸히 지내오고 있는 실정이다.
석탄산업 증대라는 정부의 기조아래 ‘증산보국’을 실시했고 그 아래에서 수 많은 광산노동자들이 막장 속에서 숨져갔다. 물론 광산은 기업이 운영했지만 그에 대한 혜택과 수많은 지하자원은 정부가 운용했고 국민들에게 나눠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근대화를 이루었고 2021년 기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높아졌다. 이 속에는 광부들의 피와 땀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 산업현장 가운데 단일 사고로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숨진 직종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비록 많은 순직 광부들이 이름만 남겨진 채 위패로 모셔지고 위령제를 지내고 있지만 못찾은 영령들도 많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위해 희생된 4100여 이상 영령의 넋을 기리는 이러한 위령제 행사를 광산으로 개청된 태백시만의 행사로 행해지기에는 그 규모와 현실로 비추어 볼 때 국가적 행사로 행해져야 함은 당연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로보팜 사업장의 과거는 석탄을 캐던 상원탄광부지였다. 1985년 당시 목욕탕 앞 난장에서 배고픔을 채웠고, 안전이란 구호로 방우리(생산 작업지시회의)를 하던 곳, 대한민국을 위해 따뜻한 온기(무연탄)를 캐냈던 역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그 아픔의 장소에서 희망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지금은 검정에서 초록희망을 만들고 있다.
김강산 태백향토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석탄산업은 ‘조선광구일람’(朝鮮鑛區一覽)을 근거로 ‘태백에서 석탄 생산의 시작은 1936년 11월이 아닌 1921년 1월’이라며 ‘2021년 1월이면 석탄을 캔 지 100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조선광구일람은 조선총독부 식산국 광정과에서 우리나라 지역별 광산을 광산명, 광종, 광구면적, 광업권자, 주소 등을 정리해 1941년에 편찬한 책이다.
올해 석탄산업 100년, 태백시 개청 40주년에 막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증산보국에 힘썼던 광부들과 순직광부의 가족, 병마와 싸우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광부의 옷을 벗고 침대에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비춰지길 바라면서 산업전사위령제에 정부는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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