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영동선 통리-도계구간 스위치백 철도를 따라가는 철도여행
인클라인 철도는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강원남부 탄전지역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철도는 그 역사만큼이나 추억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 역사속에서 피어난 탄전지역의 철도를 따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고한역을 지나면 우측으로 삼척탄좌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나타난다. 만항재로 가는 길목에 보이는 수갱과 건물의 흔적은 이제 백운산 자락에 ‘강원랜드’가 등장하며 탄전의 역사에서 카지노의 역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한-추전역간을 연결하는 길이 4.5km의 정암터널을 지나면 태백시의 초입에 들어서고 이제는 폐선이 된 38번 2차선 국도의 일부가 열차 차창 너머로 보인다.
태백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인구 10만명을 넘나드는 도시였으며 그때 황지읍과 장성읍을 합쳐 시로 승격됐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태백시’ 하면 바로 석탄산업을 떠올릴 정도로 태백시와 석탄을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1930년대 일본은 석탄을 신속히 수송하고자 영동선을 부설하기에 이르렀으며 영주-철암간 철도와 강릉-도계간 철도가 이때 건설되었고 도계와 태백의 석탄은 도계-철암간 철도를 건설하면서 더욱 더 많이 일본으로 실려갔다. 그 중심에 있던 항구가 바로 묵호항이다. 지금도 묵호항-동해역간 철도가 연결되어 있어 그 때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도계-철암(동백산)간 철도는 그야말로 난공사 구간이었다. 통리역에서 내려 도계쪽으로 바라보면 눈이 아찔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어렸을 적 배웠던 지리부도에는 통리협곡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바로 이곳 태백시와 삼척시 도계읍 경계이다. 해발 720m에서 300여m로 급경사를 이루는 구간을 철도로 연결하기엔 무척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일부 구간에 대해 인클라인(강색철도)과 스위치백 건설방식을 적용해 일부 철도는 현재도 운행되고 있다.
산골터널로 가는 철도
영동선 동백산 역을 지나면 5분이 채 되지 않아 통리역에 머물게 된다. 통리역은 태백시 연화동(현재 황연동으로 개칭)에 위치해 있으며 통리역 구내에 인클라인 철도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통리역에서는 심포리까지의 철로가 직선으로 잇지 못하고 ㄹ자 형태로 내려간다. 1962년 국가재건회의(의장 박정희)가 주도해 수송이 불편한 인클라인 철도를 폐지하고 직접 심포리역으로 내려가도록 설계해 준공했다.박정희 의장이 통리역에서 준공식을 위해 철로 위해 쇠말뚝을 박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남아있다.(태백문화원 홈페이지에는 이같은 과거 사진들이 수록돼 일반에 공개자료로 볼 수 있다).
통리역은 급경사 구간의 시작지점(최고 지점)으로 급경사를 이리저리 돌아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철도가 8.6km(10분 소요)나 이어져 심포리역으로 이어진다.
#통리역 구내에 있는 인클라인 철도의 흔적. 어래쪽이 심포리역이다.
통리역을 출발한 열차는 서북쪽으로 달려 여러 터널을 지나면서 다시 긴 터널을 맞아 우측으로 커브를 튼다.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열차가 되돌아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열차는 다시 왼쪽으로 커브를 틀며 터널로 진입하게 된다. 긴 터널을 지나면 심포리 역이 보이는데 신호장 역으로 여객업무는 취급하지 않는다. 보통열차(과거 비둘기 호)를 이용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승객들은 이곳에서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역은 여전히 통리와 도계 사이의 깊고 급한 계곡 중간에 있다.
심포리역에서 열차가 신호대기로 멈춘다면 승객들은 인클라인(강색철도)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통리에서 심포리까지 이어진 급경사로를 기차가 오르내리기에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인클라인 철길인데, 급경사 구간에 레일을 깔고 기차를 전기모터와 연결된 줄에 매달아서 케이블카를 운행하듯이 끌어올리고 내리는 방식으로 운행되는 철길이다.
기차가 심포리역에 도착하면 승객들은 모두 열차에서 내려서 걸어서 1시간 거리의 통리역까지 올라 가서 통리역에 대기 중인 열차로 갈아타야 했다.
#올리역에서 심포리쪽으로 내려다본 강색철도(인클라인)과거사진.
사라진 강색철도
강색철도(인클라인)의 사진은 태백문화원이 발간한 <태백의 어제와 오늘>에서 발췌한 것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김풍환씨가 1955년경 심포리와 통리사이 강색철도(인클라인)를 촬영한 사진중 일부다. 현재는 태백시 통리역 구내에 터널의 일부만이 흔적으로 남아있다.(사진 중심부분에 멀리 보이는 터널이 38번국도와 맞닿은 통리역 구내로 지금은 잡초더미로 남아있음)
#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아래쪽 협곡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멀리 도계읍이 보인다.
기관차를 제외한 화차는 쇠줄로 끌어올리거나 내렸고 승객들은 걸어서 오르내렸다. 철길 왼쪽으로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 등장한 직업이 새끼장수들과 지게꾼들로 새끼장수는 겨울철 신이 미끄럽지 않도록 묶어주는 일종의 아이젠 역할을 하므로 이들 새끼를 판매했으며 지게꾼은 승객들의 짐들을 실어날랐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한문으로 풀이하면 '강색 혹은강삭'은 줄을 끌어 올리고 내린다는 뜻으로 케이블카아를 삭도 라고도 한다.)
#심포리역에서 통리역쪽으로 본 강색철도 과거사진.
이 강색철도는 험준한 태백산맥을 철마가 넘지를 못했고 꼬리만 떼어 쇠줄로 끌어올리고 내렸던 것을 1962년 현재의 ㄹ 자 형태로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ㄹ 자 형태의 영동선 구간도 영동선 철도이설 사업으로 루우프식(또아리) 터널공사를 실시, 이도 역사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한동안 태백과 도계지역 문화계 및 행정기관에서는 이 강색철도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철도청의 예산문제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염원 속에 철도청도 스위치백 철도만큼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이를 보존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스위치백 Switch Back
스위치백은 ‘자세를 반대로 바꾸다’는 뜻. 열차가 가파른 산길을 오르거나 내려가기 위해 지그재그 형태로 이동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스위치백 시스템은 산을 감아 오르는 루프식 철도를 놓기 불가능한 곳에 설치된다.
태백시 통리역(680m)과 삼척시 도계역(245m) 사이는 해발고도가 435m나 차이 나는 급경사여서 기차가 한번에 고개를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나한정역과 흥전역 사이의 구간은 기차가 진행 방향을 앞뒤로 바꿔가며 오른다.
#흥전역에서 심포리역(우측)과 나한정역(좌측)으로 바라본 스위치백 철도
심포리역을 출발한 열차는 영동선 철도의 흥전역(강원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 이르러 잠시 멈춘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스위치백 시스템 철길로 국내에서는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리협곡을 열차가 지그재그로 가는 방식이며 열차를 타본 승객이라면 재미있는 구간이 될 듯 하다.
이곳에는 하루 70∼75회(객차 24회 포함) 열차가 지나간다. 흥전역에 진입한 기차는 후진하기 위해 역 구내의 철길 끝(터널)까지 들어간다. 그런 뒤 1000분의 30(1000m당 30m 상승) 급경사 철로를 통해 뒷걸음질 치며 서서히 산을 내려간다. 이 스위치백 구간은 다음 역인 나한정역까지 1.5km. 통과에는 5분이 걸린다.
심포리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흥전역에, 도계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나한정역에 각각 진입하면 객차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스위치백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잠시 후진한다는 내용. 흥전역의 환경은 나한정역보다 더 열악하다. 나한정역은 주위에 민가(15가구)도 있지만 이 곳 흥전역은 근무자도 기차로만 오가야 하는 산중턱 절벽 위 오지다.(시멘트길은 있어 승용차도 오갈 수 있다) 승객은 역사무실의 외벽에 쓰인 글을 보고 이 곳이 스위치백 철도역임을 알 수 있다.
#심포리 철길 건널목에서 올려다 본 통리협곡(가운데 꼭대기가 통리역이다)
애환의 서린 곳 통리와 심포리길
이 심포리와 통리 두 역은 서민들의 손길과 애환이 깃든 곳이다. 1962년 지금의 철길이 가설되기 전만 해도 서울(청량리, 영주)과 통리, 강릉-심포리를 오가는 객차는 모두 이 두 역이 종착역이었다. 두 역을 잇는 철도(1.1km)가 있지만 경사가 급해(15도) 운행할 수 없었기 때문(인클라인 철도를 지칭). 그래서 승객들은 두 역 사이의 산기슭을 걸어서 오르거나 내려가야 했다.
하산 길은 그나마 수월했다. 반면 한 시간이 꼬박 걸리는 등산 길은 고역이었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그래서 역에는 봇짐이나 가방을 운반해 주기 위해 지게꾼이 있었다. 까까머리 학생들도 달음박질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자리를 잡아주고 수고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화물차는 달랐다. 통리역에서 케이블을 연결해 두 칸씩 매달아 끌어 올리거나 내렸다. 이것이 역사로만 전해지는 인클라인 철도다. 통리와 나한정, 이 두 역을 잇는 가파른 산악은 이렇듯 인클라인과 스위치백, 두 시스템으로 연결(1940년)됐다. 그러던 중 인클라인 철도는 우회철도 개통으로 1963년 사라졌고 스위치백도 퇴역을 앞둔 상태다.
#흥전역
솔안터널, 2006년 12월 7일 관통
공사 시작 5년 6개월만에 국내 최장 터널인 솔안터널(16.24㎞)의 굴착공사를 마치고 2006년 12월7일 관통식을 가졌다.
솔안터널은 영동선 철도이설 공사 중 태백시 백산동과 삼척시 도계읍을 잇는 16.24㎞의 국내 최장 터널로 지난 2001년 7월 착공하여 5년 6개월만에 루우프식(또아리)으로 관통하게 됐다. 영동선 철도이설 공사는 경북 영주와 강원 강릉을 잇는 총연장 193㎞의 영동선 중 안전사고 등이 우려되던 동백산-도계 구간의 기존철도(19.6㎞)를 폐선하고 단선철도로 이설하는 공사다.
솔안터널은 루프(Loop)형 터널(루프형 터널은 중앙선 원주시 반곡역-치악역 구간과 중앙선 단성역-죽령역 구간 등 2곳에 설치돼 있다)로 태백시 동백산역과 삼척시 도계역 사이의 표고차(387m)를 극복하고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발 1,171m의 연화산 속을 나선형으로 한바퀴 휘감은 루프 형태의 설계를 적용했다. 또한 대우건설은 인공위성 영상분석, 자이로(Gyro) 정밀측량 등 첨단과학기술을 적용하여 터널의 품질과 안정성 확보에 최선을 다했다.
#도계역 대합실에 있는 솔안터널 조감도.
솔안터널은 복선이 아닌 단선 철도로 개설하고 터널 중간에 열차 교행과 터널 유지 보수를 위해 터널 10㎞ 지점에 교행역을 설치했다. 교행역은 전자동 무인시스템으로 선로전환, 방향전환 등의 열차 교행 임무를 담당하며, 비상시 승객의 대피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또한 교행역 상부에는 높이 235m의 환기용 수직구가 설치되며, 화재 등 비상시를 대비해 사갱 2개소에는 구난대피소, 환풍기 12대 및 비상 진·출입로를 설치해 비상시 승객을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 환기용 수직구는 태백시 문곡소도동 공설운동장 인근에 한 곳 더 설치돼 있다.
2009년 솔안터널이 완공되면, 열차의 안전운행이 확보됨은 물론 운행시간이 기존 34분에서 22분으로 12분이 단축되는 효과가 있어 지역개발 활성화와 국가 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현재 터널은 대우건설에서 시공한 충북 영동에서 경북 김천에 이르는 경부고속철도 황악터널이 9.975㎞로 가장 길다. 또 철도시설공단에서는 원주-제천간 복선철도 공사에 장대터널을 건설키로 하고 측량을 마쳤으며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서 제천시 봉양리에 이르는 구간에 대해 터널화하는 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현재는 실시설계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주-제천간 터널이 완공되면 반곡-치악간 루우프식 터널도 사라질 전망이다.
솔안터널을 포함한 영동선 철도이설공사는 2009년 12월에 완공되며 새로운 철길로 열차가 운행되면 인클라인과 스위치백으로 달리던 열차는 흔적만 남은 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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