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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사

광부의 희망 꿈을 찾아서 7 최초의 탄광축제 광공제, 그리고 변화

올해 본지 태백정선인터넷뉴스의 슬로건은 ‘광부의 희망, 꿈을 찾아서’이다.

 

올해 주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계셨던 이곳에 석탄산업의 흔적들을 잘 보존하고 또한 관리하며, 석탄문화제와 산업전사위령제, 위령탑의 오랜 보존, 그리고 태백시와 현대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성역화, 성지화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게끔 해야 하겠다. 따라서 매 회 각기 다른 소주제들로 꾸미기로 했다.

 

▲ 2008년 제27회 태백제 연탄나르기.(출처=대한석탄공사 홈페이지)

 

이번 시간에는 사북과 도계의 석탄문화제 및 블랙다이아몬드 페스티벌, 그리고 태백제에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던 석탄관련 문화행사 등을 중심으로 보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각종 문헌과 기록, 태백과 삼척문화원 등 전국문화원연합회가 발간한 자료 인터넷기록물을 찾아본 결과 더 많은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태백에서 행해졌던 ‘광공제’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자세하게 보도, 석탄산업의 중심이 ‘태백’의 화려했던 모습을 찾아보기로 했으며 2회로 구분해 펼치기로 했다.

 

광공제의 탄생 그리고 행정구역 개편

광공제는 광공업의 발전을 통한 지역발전과 광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북돋우려 마련된 행사이다. 광공제의 시작은 1968년 8월3일부터 2일간 죽서루 광장에서 처음 개최했다. 행정구역 개편(1981년) 이전의 일이다.

 

7회 광공제(1978. 10.17~18)부터는 삼척시 황지읍 지역에서 열렸는데, 이때부터 행사명이 ‘태백광공제’로 개명했다. 1981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황지읍과 장성읍은 삼척시에서 분리, 태백시로 승격 이후 명칭이 ‘태백제’로 이름을 바꿨으며, 탄광촌 특색을 지닌 많은 프로그램도 폐지됐다.

 

태백시 지역은 1981년 이전만 해도 삼척시 행정 관할이었다. 따라서 ‘광공제(鑛工祭)’가 열리던 1960∼1970년대에 태백은 삼척에 속했다. 이에 최초의 탄광 축제인 광공제를 삼척·태백지역의 축제였다고 하는 것이다. 광공제는 광공업의 발전을 통한 지역발전과 광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북돋우려 마련된 행사이다. 전야제의 중심행사인 광공기원제, 본 행사장에서의 모범 광공업체 노동자 표창 등의 행사는 축제의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광공제는 1968년 8월3일부터 2일간 죽서루 광장에서 처음 개최했다. 이어 2회 광공제(1969. 8. 1 ~ 3)부터 3일간 개최하는 것으로 행사 규모를 키워 삼척시 사대광장에서 진행했으며, 축제 기간 동안 삼척시 관내에서 운영되는 70여 기업체의 공장기(工場旗)가 행사장에 게양되면서 광공제 분위기를 돋웠다.

 

3회 광공제(1970. 1. 23)도 사대광장에서 개최됐는데, 이때는 삼척시 관내 30여 개의 광업소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탄광 노동자들을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시켰다. 관 주도의 행사가 노동자들이 참가하는 축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4회 광공제(1971. 10. 8)도 사대광장에서 진행했는데, 4회 광공제가 열린 뒤에는 한 해를 건너뛴다.

 

5회 광공제(1973. 7. 1)는 삼척시 장성읍 황지리에서 황지읍 승격을 기념하기 위해서 장소를 황지읍으로 옮겨 개최했다. 순직 광부위령제를 비롯하여 17개 종목이 진행됐으며, 12만 명이 행사장을 찾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부분(인원)은 기록으로 전해진 만큼 사실관계가 필요하다.

 

6회 광공제(1975. 11. 7)는 죽서루 광장에서 진행되었으며, 이후 행사가 2년 중단했다. 7회 광공제(1978. 10. 17~18)부터 삼척시 황지읍 지역에서 열렸는데, 이때부터 행사명도 ‘태백 광공제’로 개명했다.

 

태백 광공제를 주관한 태백 광산제 추진위원회는 축제 참가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광공업 중심에서 탄광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행사 참가 범위도 삼척 관내 업체에서 정선과 영월 등 인근 탄광 지역까지 확대하여 강원 도내 탄광업체 종사자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광공제가 폐지되자 인근 지역에서 석탄관련 문화제가 태동하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태백 광공제는 탄광에서 순직한 광부의 영령을 기리는 ▲산업전사위령제를 가장 먼저 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광부들의 동발 조립 경기, ▲동발 시공 시범경기, ▲연탄이고 달리기, ▲동발 지고 달리기, ▲수타식 연탄 만들기, ▲광업소 대항 줄다리기 등의 탄광촌 특색이 담긴 행사로 가득했다.

 

태백 광공제는 1981년 태백시 승격 이후 명칭이 사라진다. 태백시는 ‘태백제’로 이름을 바꿨으며, 탄광촌 특색을 지닌 프로그램도 없앴다. 그나마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태백제 행사에서 ‘동발 조립 경기’가 있었다. 각 광업소에서 선발된 기능이 뛰어난 광부들이 동발 조립을 선보이며 경연을 벌였으며, 심사 때는 안전·신속·정확도를 측정했다. 그러다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 폐광이 진행되면서부터는 동발을 세우는 경기마저 태백제의 축제현장에서 사라졌다. 석탄산업의 쇠퇴와 함께 광공제는 그렇제 희미하게 우리의 옆에서부터 기억으로 사라져갔다.

 

태백의 산업전사위령제는 1975년 산업전사위령탑 제막과 함께 시작하여 태백 광공제 기간에 열렸다. 광공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태백제 기간에 위령제를 올려지고 있다. 산업전사위령탑에는 2019년 현재 4104위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그리고 산업전사위령제는 태백제와는 성격이 다른 관계로 강원도가 주관이 되어 정부인사가 참석하거나 조화 화환을 보내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백제와 산업전사위령제가 분리 진행되는 이유다. 지자체에서도, 언론에서도 그러했다.<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