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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인터뷰·칼럼

기고-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4 각종 기념일 있어도 광부의 날 없다(상)

지난해 본지 태백정선인터넷뉴스의 슬로건은 ‘광부의 희망, 꿈을 찾아서’였으며 (사)석탄산업전사추모 및 성역화추진위원회(위원장 황상덕)의 활동에 따른 기획특집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1차 포럼 가운데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의 주제발표의 내용 전문을 게재했다.

 

올해 주제는 석탄산업전사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및 예우,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것으로 산업전사들을 위한 문화행사, 석탄산업유적지 발굴, 캠페인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했다. 따라서 ‘산업전사의 고향에 빛을’ 이라고 정했다. 그 첫 번째 특집으로 지난해 12월9일 강원랜드에서 열린 특별법 제정위한 2차포럼 ‘산업전사 예우 특별법 이래서 필요하다’ 주제발표 전문을 싣는다.

 

3) 산업전사의 현실: 진폐재해자의 사례 김선자(선탄부), 면담: 2021년 7월22일, 장소: 중앙진폐재활협회 사무실

김선자 씨의 할아버지는 도계 흥전 상사택(흥전초등학교 앞의 밭을 사택으로 만든, 2021년 현재 새마을사택 5층 건물이 들어선 자리) 자리에서 조를 비롯한 몇 가지 곡식 같은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농부였다. 도계지역 탄광이 개발되면서 김선자 씨의 아버지는 농부가 아닌 광부가 되었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흥전갱에서 근무를 한 김선자 씨의 아버지, 그리고 1940년생의 김선자 씨 역시 탄광노동자의 길을 걷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라기보다는 남편의 뒤를 이어 탄광노동자가 되었다.

 

김선자 씨의 남편 역시 도계광업소에서 근무했으니, 아버지를 비롯해 한 집안에 3명이 광부로 일한 독특한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위까지 광부로 맞았으니, 아버지와 김선자 씨 부부, 그리고 사위까지 한 집안 3대 구성원 4명이 광부가 되었다. 대를 이어서 근무하는 집안이 많은 탄광촌이라지만, 3대 4명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종종 언론에서는 한 집안에 같은 일을 하는 가족이 많을 때는 판검사 법조계 집안이니, 교육자 집안이니, 군인 집안이니 하면서 자랑스럽게 가족의 삶을 다뤄주기도 한다.

 

법조계 집안은 4월 25일 법의 날을 전후하여, 교육자들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군인 집안은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전후하여 신문마다 방송마다 인물특집을 다룬다. 개인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자랑스럽다는 듯이 다룬다.

 

그런데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하는 산업전사는 더 자랑스러운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광부 가족을 다룬 사례가 없다. 1990년 초까지 우리는 군사독재, 문민독재를 살던 시기이니 언론은 곧 정부의 이념을 전달하는 창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언론의 의도는 정부의 의도와 동일시할 수 있다. 광부들이 우리 사회의 자랑스러운 인물이 아니어서 언론과 정부에서 기피한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어쩌면 광부 가족을 다룰 광부의 날이 없어서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국가기념일 중에는 상공의 날(3월 셋째 수요일)이 있고, 국군의 날이 있는데도 예비군의 날(4월 첫째 금요일)이 있다. 보건의 날(4월 7일), 과학의 날(4월 21일), 철도의 날(6월 28일), 세계 한인의 날(10월 5일), 문화의 날(10월 셋째 토요일), 경찰의 날(10월 21일), 교정의 날(10월 28일), 금융의 날(10월 마지막 화요일), 농업인의 날(11월 11일), 소비자의 날(12월 3일), 무역의 날(12월 5일) 등 별의 별날이 다 있다. 그런데 광부의 날은 없다.

 

북한에는 광부의 날(광부절)과 탄광부(탄부절)의 날이 각각 있는데, 한국에는 그 아무것도 없다. 북한은 광부들을 산업전사라 칭하지도 않았으나 탄부절을 통해 광부들을 예우했다. 우리는 북한의 탄광을 두고 ‘지옥같은 아오지탄광’이라고 비하했으나, 실제 북한에서는 탄부절을 두고 그들의 노동을 귀하게 여겼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다 같은 탄광 막장에 일하는 광부였으니, 어느 곳이 더 지독한 푸대접을 받고있는 것인가? 북한은 탄을 캐는 광부를 일컬어 영웅이라고 칭한다. 북한의 탄광시에도 영웅으로 등장하고, 북한의 신문에도 영웅으로 등장한다. 목숨을 바쳐가면서 일하는 광부, 신체의 손상을 입어가면서 일하는 광부직업을 알기에 북한은 광부들을 국가의 영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남한의 광부는 ‘산업역군’이나 ‘산업전사’, 증산보국이니 하는 수사만 화려했을 뿐, 정작 ‘광부의 날’ 같은 보상책도 없었다.

 

남한사람들은 이제 지옥 같은 삶을, 지옥 같은 작업 현장을 ‘아오지 탄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지옥 같은 삶이란, 지옥 같은 현장이란 ‘남한의 탄광’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도계광업소가 그런 지옥이고, 장성광업소가 그런 지옥이고, 함태탄광·강원탄광·황지광업소·사북광업소·정암광업소가 그런 지옥이었다. 국가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아오지탄광의 광부, 북한의 광부를 지옥같은 삶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탄부절의 명절까지 보내며 영웅 대접받는 아오지 탄광의 광부를, 북한탄광의 광부를 지옥에서 사는 광부들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석탄증산이 필요할 땐 말로만 산업전사라고 빈말을 던졌다가, 유공자 대우를 요구하면 ‘모든 산업영역의 일군이 다 산업전사 아닌가?’라고 되받아치는 남한사람들은 아오지탄광을 들먹일 자격이 없다.

 

북한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다 있는 노동절을 생각하여, 남한 정부가 ‘퉁’치려 들지도 모르겠다. 노동절 하나로 광부들의 노동 대가를 다 담으려고 했다면,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할 수 없다. 광부를 ‘다 같은 노동자’라고 보는 시각이라면, 국군의 날과 예비군의 날이 따로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또 법의 날이 있는데 굳이 경찰의 날이나 교정의 날까지 따로 둘 필요가 있는가? 같은 노동자의 날에 광부까지 다 넣을 심산이라면 농민의 날은 무엇인가? 은행이며, 보험사며, 증권사까지 노동절에 다 문을 닫고 노동자처럼 쉬고 있는 금융의 날은 또 무엇인가?

 

저마다 업종별 국가기념일을 두고 있는 금융·상공·보건·과학계 종사자들을 산업전사라고 칭한 적이 있었던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직무별 업계를 나열하다 보니 묘한 공통점이 있다. 국가에 대한 공로나 헌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으며, 수입도 탄광노동자들보다 많았으며, 광부들이 탄광막장에서 죽어갈 때 전혀 위험성이 없는 공간에서 일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과장일까? 광부들의 실제적인 삶은 ‘산업전사’로서 보냈는데, 산업전사 예우해달라며 진폐증으로 병든 몸 이끌고 나서보니 모두가 고개를 돌린다. 기득권 세력 중심의 국가기념일을 반성할 시기가 온 것이다. 동시에 산업화 과정에 희생된 광부들을 잊고 살던 세월도 함께 반성하고자 한다.

 

금융·상공·보건·과학계 종사자들은 사회적·경제적 여건도 광부보다 나은 처지에 국가기념일까지 차지하고 있으니 차별이 심하다. 금융·상공·보건·과학계 종사자들은 탄광막장의 재해순직이나 진폐증 같은 직업병도 없는데, 국가기념일까지 차지하고 있으니 차별이 심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