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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가 만난 사람

46 마임이스트 김성구 “대한민국 마임연극 배우의 역사였다”

 

2023년 태백문화에 있어서 이 인물을 빼 놓을 수 없다.
김성구(金成九)
대한민국 마임의 기초를 만들어주었고 마임 보급에 지대한 공을 이룬 그가 태백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한 그의 연극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그래서 본보 태백정선인터넷뉴스는 지난 여름 그를 인터뷰 했고 먼저 태백문화원 발간 ‘태백문화’에 올렸다. 그리고 이제 연말을 맞아 장문의 글로 그를 표현해 보았다. 50년째 무대 위에서 세계 공통의 언어 마임으로 우리 곁에 계신 김성구 마임이스트를 모시게 됐다.

“세계 공통의 몸짓 언어 우리는 하나가 된다”
지난해 인천에서 공연을 갖고 무대에서 입의 언어로 표현한 1세대 마임배우 김성구(72). 그가 머물고 있는 태백에서 또 한번의 몸짓으로 후배들을 위해 마임의 보급에 나섰다.
마임(mime) 또는 무언극은 연극과 연기의 한 형식으로, 언어를 쓰지 않고 몸짓과 표정으로만 하는 것을 말한다. 무언극은 거리 공연으로도 많이 볼 수 있는 표현 방법으로 실제로는 없는 벽이나 문, 계단, 에스컬레이터, 로프, 풍선 등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몸짓을 하는 것이다. 팬터마임(pantomime)이라고도 하는데, 팬터마임은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족들이 즐기는 유행가와 춤, 농담 등이 포함된 대중적인 공연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과사전에서 빌려온 글이다. 

김성구 선생님은 한국의 1세대 마임작가이며 판토마임 배우이다. 한국 마임계의 거장으로 그가 후학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197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마임 전문극단인 '73그뒤'를 창단하고, 이듬해 '제1회 침묵극 발표회'를 가진 뒤 그의 인생은 마임 교육과 보급에 앞장섰다. 마임은 그의 인생 전부이다. 현재 김성구마임극단 (SUNGKOO KIM & THE MIMECREW)을 199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 김성구 선생님에 대한 약력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는 중학교 학창 시절 우연한 기회에 마임 공연과 연극 공연을 접하게 됐고 고교 2학년 때 외국의 배우가 서울서 공연하는 것으로 본 후 깊이 빠지게 됐다. 그리고 1973년부터 마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임의 첫 무대는 창덕궁 옆 ‘공간’이라는 잡지사 사옥에서 였다.

김성구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마임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어원도 고대 그리스·로마의 무언 광대극 mimos(무언극, 흉내쟁이)이라고도 하고 어릿광대, 희극 배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태백에 정착하고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 그는 인천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태백에서의 삶을 본격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카페 쎄느에서 컬레버레이션 퍼포먼스를 가졌으며 올해는 삼수령 바람의 언덕을 뒤로 하고 문곡소도동에서 보금자리를 다시 틀었다.

10년 전 나의 마임 40주년 기념 공연을 서울서 했을 때 태백에서 오신 관객 한 분이 ‘태백은 아주 좋은 동네 이며 태백에서 한 번 살아보시겠습니까’ 했다. 그래서 고민 없이 태백으로 향했으며 태백의 별과 달, 산소가 좋았고 삼수령에서 있었고 최근에 문곡소도동에 보금자리를 바꾸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카페 쎄느에서의 공연을 클로즈업 했다. 그날 공연에는 스페셜게스트로 배우 기주봉, 장구마스터 이봉교, 오페라가수 소프라노 임지혜 등 유명 예술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달은 거기에 있었다’를 연출하고 그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어느덧 노신사가 된 김성구 마임이스트는 태백에서의 삶속에서 느낀 ‘달’의 이미지를 우리들 일상속에 녹아있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생각을 노래와 몸짓으로 무대위에서 옮겨보고자 연출했다. 일반연극 공연의 틀에서 벗어난 무대였다. 

나이가 드니 무대에 서는 목적도 바뀐다. 젊었을 때는 ‘스타컴플렉스’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고 싶었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세상 사람들의 고단한 인생길 그런 것들을 무대에 담는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마임이며 우리가 무대에 서는 궁극의 이유이기도 하다. 마임은 그래서 인생을 무언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다.

‘마임’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된 예술의 역사 였다
1세대 마임이스트인 그는 어렵지만 차분하고 자세하게 마임을 풀어냈다, 
“우리는 해석할 때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난 그렇게 들었어. 요즘은 꼬마들 조차도 익숙한 용어가 됐지만 우리가 시작할 때만 해도 전문용어야, 연극 전공하는 사람들의 교과서 같은 데에도 그 단어가 잘 안 들어 있어. 원래 어원은 그리스 말에서 출발을 한단 말이야. 일반 예술의 모든 서양 예술의 출발이 다 희랍 비극에서 다 그 뿌리를 두니까”

희랍비극(希臘悲劇)은 기원전 5~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성행한 고전 연극으로 분류된다. 신주(新酒)의 술통을 따는 봄의 대축제에 상연된 것으로 그리스 신화와 영웅 전설을 소재로 하여 성행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에 의해 발전되어 에우리피데스에 와서 전통적 연극이 되었다. ‘희랍(希臘)’은 ‘그리스1(Greece)’의 음역어이다.

그렇게 해서 김성구 유진규 등 1세대 마임이스트들은 처음엔 깊은 뜻고 모르고 그저 들리는 대로 뱉듯이 ‘마임’이라는 연극 장르에 심취해 있었다. 김성구와 유진규는 서울 동성중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던 것을 신화적이고 세계 공통적인 언어로 만들어 내야 하니까 무척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세계 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말은 못 알아들어도 마임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마임은 장르가 아닌 몸짓으로 연기하는 배우
그런 그가 다시 ‘마임’에 대해 보따리를 풀었다.
“전문 사전식으로 얘기하면 마임은 장르가 아니야. 몸짓으로 연기하는 배우를 지칭해. 그런데 그 앞에다가 복합 명사가 들어가는 판토스 플러스 마임이 들어가지. 판토마임이 돼. 복합 명사야. 판토는 영어로 따지면 올(all)이라는 의미야. 전부 모든 것 어 그 의미가 판토스야. 플러스 마임이니까 모든 거에 대한 흉내야.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얘기를 한다면 판토마임은 말 없이 하는 연극을 지칭하는 거야.”

그리고 그는 태백에서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가 첫 번째로 전하는 마임은 ‘이미지’였다. ‘달은 거기에 있었다’ 등 자연이다.
그래서 그는 전에 거주했었던 삼수동 매봉산 꼭대기에 오르락 내리락거리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비’다. 그는. 비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비와 달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좀 한번 무대에다가 내 식대로 그려봐야 되겠다고 했고 그러한 자연 현상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서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점 선 면’이다. 별 이기도 하다. 별은 멀리 있으니까 점이라고 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단추도 점이 되고 점으로 통하는 어떤 소통거리를 찾으려고 그랬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선이다. 태백의 근처는 거의 전부다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산꼭대기를 돌아보면 전부 선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그 다음에 면이다. 뭐냐 하면 산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그거는 뭐 어떤 우리 일상의 어떤 모습 같은 것들 그것이 이제 좀 이제 그 두 번째 시리즈의 대본화된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그리고 김성구의 세 번째 이야기는 구체적인 소재를 절골에서 찾았다고 했다. 이 동네는 60년대씩 골목이 많다. 마임이스트 김성구는 이러한 골목이 좋다고 했다. 그러한 골목속에서 찾은 공통점의 하나는 어느 골목이라도 마주 보는 집이 있는데 창문은 절대 마주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 부제는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이라는 제목이다. 남자가 아침에 이슬을 맞고 잠이 깨 가지고 있는데 두부 사러 나왔다가 아내한테 걸려서 혼나는 장면이 세 번째 작품이다.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이라는 제목에서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 있는 조그만 어느 집의 사람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고 했다.
  
분장에 대해 논하다.
마임에서 분장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삐에로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연극 등에서 분장을 진하게 하지 않으면 인물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명 때문이기도 하다.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삐에로 분장의 경우 한 얼굴에 희극과 비극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며 빨간 코를 붙이면서도 꼭 눈물자국을 찍어 주어야 한다. 한 얼굴에 희극과 비극을 다 담고 있는 데에서 비롯됐으며 본질은 눈물자국이며 김성구는 조만간 분장도 하지 않고 해 볼려고 한다. 지난해 태백에서의 무대에서는 분장을 했었다.

대부분의 마임들은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지닌다
판토마임은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노드라마와도 비슷하지만 같다는 뜻은 아니다. 모노드라의 범주와 형식, 일인극으로 들어가지만 연극에서의 모노드라마 속에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 하면 혼자서 액션 리액션을 다 할 수가 있는 영역이 훨씬 더 보장되어 있어. 근데 대사는 딱 틀에 박혀 주고받아야 되잖아. 물론 독백도 있고 뭐 방백도 있긴 하지만, 모노드라마는 언어로서도 곁들여 전달하지만 마임은 몸으로 전하는 것인 만큼 전 세계인들과 통화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지...”

 

덧붙여 그는, 그래서 마임 마임의 역사학자들은 꿀벌들이나 이런 벌레로부터 마임의 의미라는 힌트를 받고 걔네(벌레)들의 질서 속에서 날개짓이며 비비고 이런 것들이 신호가 있는 것이다. 그게 걔네들에겐 ‘소통’이라고들 했다.

본질적으로 연극이든 음악이든 모든 것이 그 궁극의 목적은 소통이다.
나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호소력을 갖고 전달하고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 마임이다. 또한 마임은 연극과 같이 모든 것이 딱 끝난 다음에 박수소리가 나왔을 때 희열을 느낀단다.

마임이스트 김성구가 태백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가 태백에서 살아가는 이유다. 후학을 위해서 일하고, 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교육기관도 갔었고 문화계 인사들과도 교류했었다. 어린이 카니발(어원은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재 직전에 3일 내지 1주일에 걸쳐 행해지는 축제다.)을 하고 싶어 했다.

김성구가 택한 까니발은 세리모니 이며 난장(亂場)이다. 페스티벌(축제)과 달리 카니발은 제축(祭祝=제사를 지낼 때, 신명에게 고하는 글)이라고 했다. 신과의 대화다. 신에게 의탁도 하고 신하고 통하는 것이다. 다크 소울이다.
그런 의미를 배우는 꼬마(후학)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진짜 재밌는 게 스펀지다. 습득하며 모든 것을 다 흡수한다.
그래서 교육기관도 다녔고 마임이라는 것을 가르쳐줄 공간이 필요해 이곳 저곳을 다녔고 문화계 인사들을 접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위한 마임을 마련했다. 이솝우화를 소재로 했다. 5분짜리 시리즈를 10토막으로 나누어 만들어 놓고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 완성될 즈음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춤과 마임은 똑같이 몸을 매개로 하는 언어다. 
춤은 음악적이라고 하면 마임은 문학성이다. 소위 말하는 서사성이 있는 것이다. 춤은 음악적인 데에서 율동을 보이는 감정의 표현을 하는데 마임의 경우 연기 영역이라 이야기를 지니는 것이며 서사성이 있다.

태백에서 꽃을 피우다
김성구의 마임은 이제 종착역인 태백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11월10일과 11일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마임을 위한 다섯 개의 미디어 퍼포먼스’라는 주재로 선보였다. 우리 에게도 알려진 배우 기주봉을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마임이스트 김성구의 태백 무대를 축하했다.

다섯 개의 미디어 퍼포먼스는 ‘우우당(雨友堂)이야기’, ‘달빛에 홀린 세동무’(모노로그), 오브제 ‘달맞이’ 마임 보월(步月), ‘달빛에 그을린 늘보 ’달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 현대무용 ’가뭄에 단비‘ 등이다. 그렇게 11월11일 빼빼로데이(가래떡데이)날 태백의 관객들에게 깊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마임이스트 김성구는 태백에 있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스펀지와 같은 우리 꼬마들을 위해 소꿉장난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마임을 뿌려주고 있었다.

김성구. 그는 앞으로 후학 양성에 힘을 쓰고자 동분서주할 것이라고 했다. 태백의 교육기관과 문화계 인사를 만나면서 마임홍보 및 보급과 알리기에 나섰고 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태백에서 마임과 함께 태백의 문화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