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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사

산업전사 특별법 제정위한 제2차 포럼 기고-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10

탄광문화 계승하려는 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본지 태백정선인터넷뉴스의 슬로건은 ‘광부의 희망, 꿈을 찾아서’였으며 (사)석탄산업전사추모 및 성역화추진위원회(위원장 황상덕)의 활동에 따른 기획특집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1차 포럼 가운데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의 주제발표의 내용 전문을 게재했다.

 

올해 주제는 석탄산업전사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및 예우,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것으로 산업전사들을 위한 문화행사, 석탄산업유적지 발굴, 캠페인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했다. 따라서 ‘산업전사의 고향에 빛을’ 이라고 정했다. 그 첫 번째 특집으로 지난해 12월9일 강원랜드에서 열린 특별법 제정위한 2차포럼 ‘산업전사 예우 특별법 이래서 필요하다’ 주제발표 전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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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업전사 예우에 관한 특별법 제정 활동

한국 현대사에서 민중이 국가로부터 겪은 피해는 일제식민치하의 징용(노동자 징용과 위안부)을, 해방 이후에는 제주 4·3사건, 광주 5·18민주항쟁, 삼청교육대 등을 대표적으로 꼽고 있다. 탄광촌이 국가 통치권력으로부터 겪은 피해 사례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제주 4·3사건의 축소판으로 불리고 있는 1946년의 화순탄광노동자 학살사건과 1980년의 사북항쟁을 들 수 있다.

 

한국 근대사의 아픈 상처로 기록된 미군에 의한 화순탄광노동자 학살사건은 오래도록 감춰져 있었다. 전남 화순의 핵심산업인 화순탄광(현재 석탄공사 화순광업소)은 해방 직후에 노동자들로 구성된 자치위원회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러던 중 1945년 10월 초 ?당시 주원료였던 석탄의 생산지를 완벽하게 점령할 절대적 필요성에서 화순을 주목하고 있던 미군정은 전술부대 4~5백명을 급파한다.?(오연호, 「미군의 화순 탄광노동자 학살」, 『말』31호, 월간말, 1989.1, pp.101~102.)

 

11월 초 미군대위 율러를 총책임자로 하여 화순탄광을 접수한 미군정은 자치위원회를 해체한다. 이에 노동조합원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은 미군정에 대항하였지만 1946년 8월 15일과 11월 4일, 너릿재와 흑토재에서 화순탄광 노동자들은 폭도와 좌익으로 몰려 미군의 총칼에 죽어갔다.

 

탄광문학을 연구하던 논문에서 화순탄광노동자 학살사건을 함께 다룬 적이 있다. 화순탄광노동자 학살 사건은 문학이나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접근하며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정 체제에서 통치권력이 자행한 화순탄광 학살의 실체는 아직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수십 명 사망에 수백 명 부상자를 기록한 화순탄광의 비극적인 사건은 “즉사한 수가 30여 명, 부상자가 500여명” 으로 알려지긴 해도 사망자의 숫자도 기록마다 달라 정확한 통계가 없을 정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화순탄광 노동자의 투쟁이 뿌린 씨앗은 계속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다룬 스탠딩 뮤지컬 <1946 화순>은 2015년 공연되어 인기를 끌면서 2016년에도 서울과 광주에서 순회 공연하였다. 또 2018년에는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뮤지컬 <화순 1946>을 초청한 바 있으니, 화순탄광노동자 학살사건에 대한 조명은 현재의 역사 속에 살아있다.

 

화순탄광노동자 학살사건이 미군정기의 일이었다면, 1980년의 사북항쟁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도 32년이나 지나서 생긴 일이며, 경찰과 군부까지 가세하여 고문을 자행한 일이다. 사북항쟁에 대해서는 자료 정리를 비롯하여 피해자 증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 학술 연구,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다뤄졌다. 사북항쟁의 주역들은 ‘사북 노동항쟁 동지회’를 구성했으며, 해마다 4월에 기념식을 열고 있는 점도 과거의 역사를 현재진행으로 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사북 폭동’의 폭도로도 불리던 이들은 2005년이 지나면서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문학권에서는 사북민주항쟁동지회와 함께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시집으로 탄광시를 엮은 『광부들은 힘이 세다』(2020)를 발간했으며, 한국의 노동운동에 깊은 애정을 지닌 맹문재 시인은 40주년 기념시집으로 『사북 골목에서』를 발간하는 등 사북항쟁의 뜻을 문화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탄 먼지 날던 탄광 호황기의 사북, 산업역군으로 살았으나 부당한 사회적 모순에 일어난 사북항쟁, 그리고 카지노 불빛이 있는 현재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사북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맹문재 시인의 40주년 기념시집 기획에서 확인하듯, 사북의 탄광은 모두 문을 닫았어도 그 탄광문화를 계승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사북항쟁은 사북지역의 현재와 끊임없이 교섭하고 있다. 대규모 폐광에 대한 대안을 촉구한 주민운동 끝에 사북 주민은 ‘폐광지역개발특별법’ 제정과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설립할 수 있었다. “폭죽처럼 터지는 카지노의 불빛도/골목을 밝혀주지 못한다”는 모순은 오늘날의 사북이 새롭게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광부들이 겪은 고통은 대부분 개인의 불운으로 방치되어왔다. 산업전사라는 이름 뒤에 당연한 희생으로 치부되었을 뿐, 광부가 겪은 피해를 조사나 정당한 평가 역시 없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순직 광부, 수만 명에 이르는 진폐재해순직 광부의 상처는 위령탑과 위령각의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다. 산업전사로 불리던 광부의 삶에 가해진 모든 고통을 규명해야 하며, 당장은 탄광사고 순직자와 탄광 직업병 재해순직자에 대한 조치만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과 인권유린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과거사 청산작업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탄광의 광부에 대한 징용은 해방 이후에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가난하여 광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역시 광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많았을 것이다. ‘막장인생’으로 통칭되는 광부의 삶 속에는 대다수가 선택하지 않는 직업의 한이 있다. 다수가 선택하지 않는 광부의 길로 끌어들이고, 그 광부의 자녀와 아내까지 광부로 만든 구조적 불합리성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과 피해문제를 추진하는 과거사 청산 과정을 보면 진상규명,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보상·배상, 기념사업 등 핵심 사안별로 각각 대응이 이뤄져 왔다. 산업전사 예우에 관한 특별법을 추진하는 방식 역시 ①산업전사의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광부 및 탄광촌 피해 사례) ②산업전사의 명예회복(순직산업전사 및 진폐재해순직산업전사 예우 및 성역화 사업) ③국가의 책임 규명, ④산업전사에 대한 보상·배상(순직산업전사 및 진폐재해순직산업전사 추모사업의 국가 주관) ⑤기념사업(산업전사 영웅전 편찬, 생애 영상 기록화, 예술로 승화) 등을 각 사안별로 진행해야 한다.<다음호에 계속>